유포 여부·사진의 수위·피해자 특정 여부 등
범행 후 증거인멸 시도, 도주 우려 등도 고려
#사례1. 지난 5월 누드모델 안모(여·25)씨는 한 대학의 회화과 전공수업에 참여했다가 동료 남성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올렸다. 이 사진은 여성들의 커뮤니티에 올라 조롱거리가 됐고, 이 남성모델은 “너무하다. 잔인하다”고 호소했다. 이른바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 경찰이 수사를 벌여 안씨를 찾아냈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안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사례2. 서울의 한 여대 앞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는 사진사 A(남·23)씨는 증명사진, 프로필사진 등을 찍으러 오는 고객들의 몰카를 상습적으로 찍어오다가 들통났다. 작년 5월부터 9개월 동안 여대생 등 무려 215명의 하반신과 가슴 등을 찍었다. 경찰은 지난 2월부터 피해자 70여명을 특정해 A씨의 범죄 행각을 찾아냈다. 경찰은 그에 구속영장 신청했지만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며 지난 19일 기각했다.
조선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안씨와 A씨는 둘 다 몰카범. 그런데 한 명은 구속되고, 한 명은 풀려났다. 이를 두고 성별따라 판단이 달라진 것 아니냐며 성(性)대결 양상도 빚어지고 있다. 두 사람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결과는 왜 달라졌을까.
이른바 ‘몰카 범죄’는 성폭력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촬영) 위반에 해당한다.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구속과 불구속을 가르는 기준은 주로 사진의 수위나 피해자 특정됐는지 여부, 사진이 유포된 범위 등이 고려된다고 법원 측은 설명했다. 물론 피의자의 범죄전력이나 범행 후 증거인멸 시도 여부, 자백 여부 등도 고려 대상이다.
서울중앙지법 한 부장판사는 “몰카 범죄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되는 속도가 빨라져 피해가 커지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서 “이 때문에 최근에는 어떤 방법으로, 얼마나 널리 유포됐는지가 처벌 수위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고 했다.
안씨와 A씨도 ‘유포 여부’가 구속과 불구속을 갈랐다. 안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사진을 올려 겉잡을 수 없이 유포됐다. 반면 A씨는 사진을 찍어서 혼자 보관하다가 걸렸다.
두 사람이 촬영한 몰카 사진의 수위도 달랐다. 안씨는 남성 혐오 사이트로 알려진 '워마드'에 동료 모델의 나체를 그대로 올렸다. ‘미술 수업 남 누드모델 조신하지 못하네요’라는 제목을 달고 글도 덧붙였다. 그러자 이 게시물에는 '작아서 보이지 않는다'는 등 남성을 모욕하는 내용의 댓글이 이어졌다. 이 남성모델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너무한다. 정말 잔인하다. 가족들이 이 일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렵다”는 등 억울함 호소했다.
이와 달리 여대생들의 몰카를 찍은 A씨는 증명사진이나 프로필사진 등 주문받은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신체의 특정부위를 클로우즈업 해서 찍어서 모았다. 그래서 주로 여대생들의 가슴 부위나 하반신 등이 찍혔다고 한다.
몰카범죄 뿐 아니라 모든 범죄에 있어 구속 여부의 핵심은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 여부다. 안씨는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사용하던 휴대폰 2개 중 1개만 경찰에 제출하고 나머지 하나는 한강에 버린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A씨에 대해 법원은 직업과 직장, 주거지 등이 명확하다고 봤다.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사진 파일 등을 지우려고 한 정황도 발견되지 않았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범죄의 증거가 이미 확보돼 있는 경우 범죄 혐의에 대한 소명이 이뤄졌다고 보기 때문에 구속할 사유가 없다고 본다”면서 “주거지나 직업 등이 얼마나 확실한지도 비슷한 맥락에서 도주 우려가 없어 구속 사유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홍익대 회화과 수업 도중 남성모델의 나체 사진을 몰래 찍어 인터넷에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모씨가 지난 12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했다. /뉴시스 |
두 사람의 구속영장 발부가 엇갈린 것 관련, 성별에 따른 차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에 대해 법원 측은 “성별로 인해 구속 여부가 결정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했다. 사건마다 사안의 중대성, 범행수법 등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형사사건 담당 부장판사는 “피해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의 정도도 구속이나 처벌 수위 등을 결정하는 요인 중 하나”라며 “이는 같은 성별이거나 남성이 피해자라고 해서 판단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전효진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