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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30 (일)

미국도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예고된 ‘가자의 재앙’ 부채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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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예루살렘 대사관 개관 강행…팔레스타인 시위대 자극

이스라엘군 ‘실탄 진압’…분쟁 이후 ‘최악’ 수천명 사상

인권단체 “정부와 군은 인간 생명에 관심이 없다”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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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지역에 평화가 깃들 때, 우리는 오늘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미국이 진실을 인정하면서 평화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했음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재러드 쿠슈너 미국 백악관 선임고문은 14일 오후(현지시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열린 미 대사관 개관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라 믿는 이들을 위한 진실이었다. 그가 평화를 말하던 시간, 예루살렘에서 불과 70㎞ 떨어진 가자지구에서는 생지옥과 다름없는 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CNN은 예루살렘 개관식과 가자 시위 상황을 한 화면에 내보냈다. 황량한 모래들판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화염과 함께 피어올랐다. 군용 트럭과 드론은 쉴 새 없이 최루탄을 쏘고 떨어뜨렸다. 들것을 든 구호요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죽거나 다친 이들을 실어날랐다.

시위대 수만명이 이날 오전부터 국경지대 분리장벽으로 향했다. 그들은 가자를 에워싼 철조망을 끊어내고, 잃어버린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스라엘군은 시위대의 행진에 실탄 사격으로 응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날만 60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부상자는 2700명이 넘었다. 1300여명이 총에 맞아 다쳤다. 2014년 가자지구 폭격 이후 희생자가 가장 많았다. 뉴욕타임스는 예루살렘의 개관식과 가자의 참상이 ‘초현실적인 대조’를 이뤘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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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가자의 비극은 예고된 재앙이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 누구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11년째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다. 지역 민심을 자극해 하마스를 고립시키기 위한 선택이다. 이스라엘은 주민 이동은 물론 식량과 의약품 등 물자유입까지 통제했다. 가자 경제는 파탄이 났다. 팔레스타인무역센터 분석에 따르면 이 지역 20~24세 인구 68%가 실직 상태다.

하마스는 폭발 직전인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려 했다. 이날 하마스는 시위대를 충동질해 사지로 몰아넣었다. 시위 당일 하마스는 가자시티 곳곳에 대형 스피커를 설치했다. “우리는 오늘 죽지만, 팔레스타인은 살 것이다” “미국은 악마다” 같은 연설들이 스피커를 타고 울려 퍼졌다고 뉴욕타임스는 보도했다. 시위 현장에서도 “(장벽으로) 더 가까이!”라는 선동이 이어졌다.

이스라엘도, 하마스도 끓어오르는 가자의 민심을 달래려 하지 않았다. 가자의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등 이스라엘 당국자들은 “가자에 인도적 위기는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봉쇄를 완화하는 조치도 없었다. 현지 일간 하레츠는 “정부 당국은 치명적인 충돌이 벌어지기까지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인화물질로 가득찬 것이나 다름없던 가자의 공기에 불을 질렀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국방부 관리를 지낸 일런 골든버그 신미국안보센터 중동프로그램 담당자는 AP통신에 “그간 중동의 소방관 역할을 해왔던 미국이 지금은 오히려 방화범이 됐다”고 말했다.

미 대사관 개관을 계기로 결국 민심은 폭발했다. 이제 더 큰 재앙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15일 가자 주민 수만명은 다시 반이스라엘 시위에 나섰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 건국 기념일 다음인 15일을 ‘나크바(대재앙)의 날’이라 부르고 기념한다.

수도 라말라 등 요르단강 서안지구 도시 곳곳에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하레츠는 이날 오후 1시까지 라말라, 헤브론 등지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시위대에 별 주저 없이 실탄 사격을 이어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실탄을 사용할 경우 다리 아래를 겨냥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유명무실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지고 다쳤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사이 다시 전면적인 군사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라드 에르단 이스라엘 공공안보장관은 15일 현지 뉴스 포털 YNET 인터뷰에서 “유혈 사태를 초래하고 있는 하마스 지도부를 암살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하마스는 비폭력 시위라는 새로운 전략을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군사적 저항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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