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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2 (화)

9년째 한국 노동자와 연대투쟁하는 일본 노동자 “이기진 못 했지만, 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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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도쿄 아사히글라스 본사 앞에서 일본 도로지바 노조원·활동가들이 항의 행동을 하고 있다. 도로지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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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해고당한 한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라.”

일본 도쿄 지요다(千代田)구 마루노우치(丸の内) 아사히글라스 본사 앞. 매달 한 차례 일본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들은 2015년 해고당한 한국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복직 투쟁을 벌이고 있다. 본사 앞 항의 행동만 7년째다.

일본 미쓰비시 그룹 소속 화학소재 기업 아사히글라스는 2004년 경북 구미에 AGC화인테크노한국(AFK)을 설립했다. AFK는 사내하청업체 GTS와 도급 계약을 맺었다. AFK는 2015년 5월 GTS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하자 한달 만에 도급 계약 해지했다.

GTS 노동자 178명 전원은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해고 노동자 가운데 22명은 아사히글라스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고 9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오고 있다.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해고 노동자들은 1·2심 모두 승소했고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한국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은 우리의 ‘철도노조’격인 ‘국철지바동력차노동조합(国鉄千葉動力車労働組合·DORO-CHIBA·도로지바)’이 이끌고 있다. 노사 협조주의가 만연한 일본 노동 운동 환경에서 타국 노동자와의 연대 투쟁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언젠가부터 아사히글라스 본사는 대응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끈질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키 미치토시(関 道利·61) 도로지바 위원장, 다나카 야스히로(田中 康宏·68) 고문, 야마모토 히로유키(山本 弘行·84) 국제연대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난 28일 지바현 지바시 DC회관(도로지바조합사무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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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세키 미치토시 도로지바 위원장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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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사히글라스 비정규직 투쟁에 싸움에 도로지바가 연대하고 있습니다. 아사히글라스 노조도 아닌 도로지바가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요

(야마모토 사무총장) “한국 민주노총과 2003년부터 국제 연대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도움 요청이 들어왔을 때 고민없이 지원해야겠다 생각했어요. 아사히글라스의 행동 방식이 예전 일본 제국주의적 행태 그 자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들 해고 방식이나 이후 대응도 비열했고요. 제국주의 시절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나카 고문) “아사히글라스 측에서 하청기업 GTS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마자 해고를 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문자 한 통으로 해고했다는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가 있나 생각이 들었어요. 당사자가 일본 기업이라니.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국주의적 행태라면 어떤 의미인지요

(다나카 고문) “예전부터 일본 자본이 해외에 진출하는 과정은 이렇습니다. 정권에 줄을 대고 정권과의 관계를 통해 혜택과 우대를 받으며 해당 나라에서 사업을 하며 수익을 벌어들입니다. 그러다 노조가 생기거나 반발이 생기면 폐업을 해버려요. 1970년대 일본에서는 ‘표류 기업’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어요. 일본 자본이 한국에서 사람을 싸게 쓸 수 있다고 하면 한국에 가고, 인건비가 오른다 싶으면 더 싼 다른 나라로 갑니다. 그게 일본 기업의 공통된 행태였습니다.”

(야마모토 사무총장) “한국에서는 노동자 파견을 인정하지 않지요. 일본은 파견을 합니다. 한국에 진출한 일본 자본은 한국법상 금지된 파견을 편법을 써서 합니다. 한국 아사히글라스 행태도 마찬가지에요. 회사 문을 닫고 자연스럽게 해고를 한 건데 그간 일본 자본이 다른 나라에서 기업을 경영한 방식입니다. 일본이 과거 조선에서 벌였던 짓과 다르지 않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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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8일 다나카 야스히로 도로지바 고문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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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연대 투쟁 한지 9년입니다. 지치지는 않습니까. 무력감을 느낄 수 있을 만한 시간입니다.

(세키 위원장) “초창기에는 아사히글라스에서 본사에서 항의 행동을 하면 본사에서 담당자 1명 내려와서 대응을 했습니다. 어쨌든 대화를 했어요. 그러다가 아사히글라스 전 대표가 유죄 판결 받았죠. 그 이후부터는 아사히글라스 측에서 일절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나카 고문) “무력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일본 노동운동은 장기투쟁에 익숙합니다. 제가 속한 도로지바도 1987년 일본 국철 민영화때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고됐고 30년 넘게 투쟁을 하고 있어요. 일본 노동운동이 약한 것도 이유이기도 하겠지만 일단 일본에서는 장기 투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야마모토 사무총장) “초조할 때도 있지요. 언젠가 한국 아사히 비정규직 지회에서 그러더군요. ‘우리는 잘못 매듭짓고 싶지 않다. 길게 가더라도 제대로 해결하고 싶다’고요. 우리도 그렇습니다. 길게 가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의 말처럼 긴 투쟁은 이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차(電車)하부 정비를 했던 청년 다나카는 1987년 국유철도 민영화에 맞섰다가 해고됐고 노인이 된 지금까지 싸우고 있다. 1981년 국철지바에 입사한 세키 위원장은 운전 자격증을 따고도 민영화 여파로 기관사 일을 받지 못했다. 지난 2012년 자회사로 출향(出向)해 차고 내 운전 업무를 하면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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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8일 야마모토 히로유키 도로지바 국제연대위원회 사무총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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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회에서 세 분은 소수에 속합니다. 집단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에서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나요.

(다나카 고문) “우리가 소수고 다수가 아닌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필사적으로 노력했고 싸웠어요. 그런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결과에 대한 분함은 있습니다. 하지만 대의를 보면 우린 틀리지 않았어요. 옳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외로움은 없습니다. 노동 운동은 중요합니다. 국내 문제 뿐만 아니라 복잡한 세계 정세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력뿐입니다.”

(세키 위원장) “조직이 확대되지 않고 있어요. 외롭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요. 다만, 긴 싸움에서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패배하지도 않았습니다. 계속 싸우고 있기 때문이지요. 싸움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버틸 수 있었어요. 이제는 일본 노동 운동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가 됐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겁니다.”

지바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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