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1905년 외교권 잃고 일본에 팔려
1891년 고종, 황실자금으로 매입
미국 파병 이끌려 로비 벌인 현장
"박보균 대기자 집중보도 환수 기여"
14일 오후 6년간의 복원을 마친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전경[정효식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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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가 1500번지.
1889년 구한말 외교관들이 처음 입주했던 130년 전 모습 그대로 복원한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이다.
1910년 일제에 단돈 5달러에 뺏긴 건물을 2012년 350만 달러에 환수해 6년에 걸쳐 철저히 고증과 원형 복원공사를 마쳤다. 오는 22일 근대 대미외교를 상징하는 역사유적 기념관으로 정식으로 개관한다.
1893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전경[미국 헌팅턴도서관 소장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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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 문양이 새겨진 감색 철제 현관도 그대로 재현됐다. 건물 오른편 주차장 터엔 꽃담과 불로문을 세우고 박석을 놓아 작은 한국식 정원을 새로 조성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한종수 박사는 “미국 속의 한국의 멋을 보여주기 위한 작은 공간을 꾸민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관엔 힘없는 소국 조선의 좌절과 망국의 회환이 서려있다.
1888년 1월 초대 공사 박정양은 부임 당시 인근 15번가 일반 주택에 세들어 살았다. 박 공사는 청나라의 압박에도 스티븐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단독 접견해 고종의 국서를 전달한 것이 빌미가 돼 이듬해 위안스카이에 의해 소환당했다. 그 뒤 2대 서리공사 이하영이 현재 공사관으로 옮겼다. 고종은 1891년 조선의 자주성을 보이려고 당시 황실 자금인 내탕금의 절반인 2만 5000달러를 들여 공사관 건물을 사들였다. 해외 공관 중 유일한 조선 정부 소유 건물이었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접견실[국외소재문화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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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한제국공사관 1층 접견실 탁자 위에 9대 이범진 공사 부부와 차남 이위종, 4대 이채연 공사 사진 등이 놓여 있다.[정효식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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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1층 접견실[미국 헌팅턴도서관 소장 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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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한제국공사관 2층 집무실[정효식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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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미대한제국공사관 2층 공사부부 침실[정효식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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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수동 국외소재문화재재단 미국사무소 소장은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20여 차례 현장을 방문해 기사, 칼럼, 저서를 통해 공사관의 존재와 독립 외교의 역사적 의미를 소개하며 환수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 공로로 박 대기자는 2013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주미대한제국공사관 1층 로비[국외소재문화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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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년 주미대한제국공사관 1층 로비 대형 태극기[미국 헌팅턴도서관 소장 사진,[국외소재문화재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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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부터 휴무인 매주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반인에 무료로 공개된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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