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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 (목)

낮은 곳 비춰 한국사회의 길 밝힌 ‘다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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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눈길 끈 독립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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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가 괄목할 만한 산업적 성장을 이룬 지난 30년 동안 주류 매체의 시선이 닿지 않은 중요한 사건을 파헤치고 사회적 모순을 드러내는 역할은 독립영화(다양성영화)의 몫이었다. 추천위원들은 시대와 함께하며 사회의 그늘진 구석구석을 훑고 그 민낯과 속살을 여과 없이 읽어낸 다양한 독립영화를 ‘한국영화 30선’에 주요하게 꼽았다.

노조결성 투쟁 다룬 ‘파업전야’
한국 독립영화 탄생 분기점


위안부 할머니 그린 ‘낮은 목소리’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새 길 개척


용산참사 ‘두개의 문’ 4·3아픔 ‘지슬’
‘사회적 모순’ 사건 민낯 드러내


김동원 감독의 27분짜리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27위)은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전두환 정부가 도시 미화를 명목으로 자행한 달동네 철거작업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로 인해 70만명이 넘는 ‘올림픽 난민’이 발생했다. 김 감독은 철거민들과 3년여를 함께 지내며 언론이 침묵한 독재의 시대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은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 작품으로, 공동체에 직접 참가한 액티비즘 다큐멘터리의 원형이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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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


바통을 이어받은 <파업전야>(1990·23위)는 “한국 독립영화 탄생의 실질적인 분기점이 된”(김동현) 작품이다. 이은, 장동홍, 장윤현 등이 속한 민중영화 제작단체 ‘장산곶매’가 만든 이 영화는 노조 결성을 둘러싼 노동자들의 투쟁과 저항을 다뤘다. 90년 3월 서울 신촌의 소극장에서 첫 시사회를 연 이후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순회 상영을 통해 관객과 만났다. 노태우 정부는 공권력을 앞세워 상영을 방해했다. 같은 해 4월8일치 <한겨레>는 “동대문경찰서는 7일 오후 <파업전야>를 이틀째 상영 중인 종로구 혜화동 예술극장 ‘한마당’(대표 김명곤)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 필름 3통, 영사기 1대, 팸플릿 1백여장과 공연계약서 1부를 압수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독립영화가 ‘사회의 거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27위)은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금표범상을 수상하며 한국 예술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 배 감독은 기획에 8년, 제작에 4년을 공들여 감독·각본·촬영·편집·미술 등 전 과정을 홀로 담당했다. <달마가…>는 인간의 생과 사,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그려내며 세속적 번뇌와 해탈이라는 선문답 같은 화두를 풀어냈다. 맹수진 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는 이 영화의 제작방식과 미학적 성취에 대해 “작가주의의 교과서라 불릴 만한 작품”이라고 짚었다.

90년대 독립영화는 본격적으로 그 지평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92년 1월부터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27위)였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기록한 이 영화는 여성주의 다큐멘터리의 새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도 여럿 따라붙었다. 국내 다큐로는 최초로 일반 상영관에서 개봉해 3만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영화 2분 길이에 해당하는 필름 구입비 10만원씩을 후원받는 ‘크라우드펀딩’도 최초로 시행했다.

독립영화의 소재·장르적 스펙트럼은 2000년대 들어 한층 더 확장됐다. <송환>(2003·8위)은 <상계동 올림픽>의 김동원 감독 작품이다. 비전향 장기수들이 2000년 9월2일 송환되기까지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촬영 기간은 10년이 넘지만, 본격적인 제작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였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탄생이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화해 분위기에 기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제20회 선댄스영화제 본상을 수상했으며, 1만8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해 장기수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환기했다. 허남웅 평론가는 “이념이나 정치를 무화하고 오로지 삶에 집중한 한국 다큐의 걸작”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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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30위)는 독립영화의 밀레니엄을 열며 상업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제작비가 6500만원에 불과한 이 영화는 10만명 가까운 관객을 끌어모았다. 맹수진 프로그래머는 “독립영화계와 충무로의 가교가 된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이 영화로 주목받은 류 감독은 <부당거래>(2010), <베를린>(2012) 등을 거쳐 <베테랑>(2015)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업영화 스타 감독이 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짙은 그늘을 드리웠던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독립영화는 80년대처럼 치열하게 사회·역사적 역할에 집중했다. 김일란·홍지유 감독의 <두 개의 문>(2012·23위)은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용산참사의 진실을 좇았고, 오멸 감독의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2>(2013·16위)는 현대사에서 가려져 있던 제주 4·3사건의 아픔을 조명했다. 송형국 평론가는 “언론이 하지 못한 일을 다큐가 해야 하는 상황은 30년 전과 지금이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관객도 호응해 <두 개의 문>과 <지슬>은 각각 7만3000여명, 14만3000여명을 끌어모았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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