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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무한경쟁 시대 베스트셀러의 지침과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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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창간 30돌 특별기획 | 베스트셀러로 본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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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점의 종합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혀 있는 베스트셀러 책들을 한 독자가 지켜보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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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는 한 시대의 종합적인 형상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가장 많이 팔린 책들의 목록은 어떤 형태로든 대중의 다양한 욕망을 반영하고, 때론 앞질러 제시한다.

지난 30년의 첫 문을 연 베스트셀러는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젊은이들에게 ‘세계를 무대로 도전하라’고 권한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기 직전에, 또 소련이 해체되기도 전에 나온 이 책은, “권력에서 돈으로, 정치가에서 경제인으로, 국내에서 세계로, 우리 자신의 근본적인 정체성 변화”(장은수)를 보여준다. 출간 여섯달 만에 100만부가 팔려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웠고, 뒷날 정주영, 이명박, 안철수 등으로 이어지는 ‘경영인 자서전’의 계보를 만들었다.

세계화 시대 컴퓨터·영어는 필수
성공 위한 7가지 습관에 빠져들어
이야기·수프·치즈·마시멜로 등
청년 향한 달콤한 힐링 메시지
인문학 과학 분야 멘토도 맹활약


90년대 본격적인 세계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국 사회의 변화는 근본적인 것이었다. 영어, 컴퓨터 등 기능을 습득하기 위한 ‘실용서’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고정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도 이때부터다. <컴퓨터 길라잡이>(1995),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1993) 등에는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뒤처지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열망이 스몄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자기계발’ 담론의 원조로 평가받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1994)이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한국 정치와 사회의 부조리를 짚어내거나 성찰하는 <김대중 죽이기>(1995),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1995) 같은 책들이 같은 목록에 올라와 있다는 점이 오히려 이채롭게 여겨질 정도다.

외환위기의 충격은 ‘위로’에 대한 갈증을 낳았다. 피폐하고 지친 사람들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1996),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1998) 등 개인의 내면을 보듬는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다. 동시에 이들은 “급격한 사회 변동에 대한 불안과 순응”(이원석)을 주입하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1998)를, “돈 앞에서 너의 욕망에 정직”(전성원)하라고 말하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2000)를 읽었다. 자기계발에 대한 욕망과 무한경쟁, 그리고 이 쓰디쓴 현실을 ‘위로’(또는 ‘힐링’)라는 당의정으로 감싸는 것은 오늘날까지도 끝없는 변주를 거치며 이어지고 있는 베스트셀러의 주된 흐름이다. <마시멜로 이야기>(2006), <시크릿>(2007) 등이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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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는 2010년대 멘토, 힐링 등의 열쇳말을 반영하기도,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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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에는 콘서트 같은 형식으로 청년들에게 힐링 메시지를 전파하는 ‘멘토’의 존재가 급부상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2010),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나아가 <미움 받을 용기>(2013), <강신주의 감정수업>(2013), <언니의 독설>(2012) 같은 책들에서는 “따스한 멘토 대신에 엄격한 코치를, 부드러운 힐링 대신에 혹독한 독설을 통해 유약한 옛 자아를 부수고 강인한 새 자아를 만들고 싶어 하는”(이원석) 욕망의 변주를 읽을 수 있다.

최근에는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인문학·과학 분야 멘토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팟캐스트에서 출발해 베스트셀러가 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015),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과 맞물린 작가 유시민·김영하, 스타 강사 설민석 등의 책들이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언어의 온도>(2016)는 서점과 독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는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어 지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으로 꼽혔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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