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5 (수)

[리뷰]연극 ‘킬롤로지’- 게임 모방 살인…이 망가진 세계의 근원을 묻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리뷰 | 연극 ‘킬롤로지’

경향신문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세 남자가 있다. 폴은 이용자들이 살인의 방식을 고안해 나가는 온라인 게임 ‘킬롤로지(Killology)’의 개발자다. 게임 속 장면 그대로 16세 소년 데이비가 살해당한 뒤, 아버지 알란이 게임에 나온 살인장비를 챙겨 폴의 집에 잠입한다.

연극 <킬롤로지>는 이 세 문장으로 흔히 떠올리게 되는 서사의 틀을 비켜간다. 아버지의 처절한 복수극도, 자극적이고 스펙터클한 스릴러물도 아니다. 세 사람은 120분간 거의 섞이지 않는다. 각각 무대의 한구석에 자리 잡고, 그저 말을 한다. 아주 많은 말을. 독백으로 쌓아올린 이야기들은 갈수록 합쳐지면서 커다란 질문의 윤곽을 잡아간다. 폭력과 뒤틀린 개인들, 이 망가진 세계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가.

물론 ‘모방범죄’의 명백한 피해자가 있다. 하지만 극은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을 지목하지 않는다. 오로지 ‘악’을 대변하는 가해자나 피해자의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그리는 대신, 여러 층위에서 비극적 살인사건의 출발점을 좇는다.

가령 폴은 부유하지만 아들과 전혀 소통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가상으로 죽이기 위해 게임을 개발했다. 게임대로 누군가 죽었다고 자신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억울하다. “게임에서 돼지가 날아다닌다고 현실에서도 그렇다고 생각합니까?” 데이비는 부모의 ‘보살핌’ 대신 폭력이 일상인 거리에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 자란 소년이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 기르던 개를 희생물로 내놓았었고, 살해되던 날에는 8살 소녀의 자전거를 훔쳐 달아나던 중이었다. 알란은 데이비가 생후 18개월 때 가족을 떠난 ‘존재하지 않았던’ 아버지다. 아들의 죽음 이후 ‘이런 비극을 막겠다’고 나서는 그에겐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여기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질문은 확장된다. 게임과 폭력의 상관관계뿐 아니라, 현실 속 어떤 중요한 관계들의 ‘부재’와 그로 인한 ‘소외’를 들여다보게 된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아버지와 아들에 집중돼 있지만, 이들이 경험한 고립과 상처는 비단 부자관계를 떠나 거대한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으로 읽힌다. “한 번 망가지면 그냥 다 망가져 버리는 것”이라고 좌절하는 알란이 “내가 손을 잡아줬더라면 될 수도 있었던 (아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불러내는 장면은 일말의 희망을 전한다. 이와 동시에 각자가 원하든, 원치 않든 행했던 일들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지, 그 책임의 문제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숙고하게 한다. 묵직한 주제는 인물들의 블랙유머와 적절히 뒤섞여 때로 웃음을 자아낸다.

작품의 문제의식을 반영하듯 극에는 ‘폭력’을 이미지화한 장면이 없다. 잔인하고 피가 튀기는 장면들은 오로지 인물들의 말을 통해 전달된다. 의자들이 나뒹굴고, 비뚜름한 거울이 인물의 실제를 다르게 비추는 무대는 가상과 현실의 비뚤어진 관계를 은유하는 듯하다.

영국 극작가 게리 오웬의 작품으로 지난해 3월 영국에서 초연한 후 1년여 만에 한국 무대에 올랐다. 영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지난 4월 영국 연극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협력극장 작품상(Outstanding Achievement in Affiliate Theatre)을 수상했다. 한국 초연은 연극 <터키 블루스> <인사이드 히말라야> 등을 선보인 박선희 연출가가 맡았다. 오는 7월22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열린다.

<유정인 기자 jeongin@kyunghyang.com>

▶ 경향신문 SNS [트위터] [페이스북]
[인기 무료만화 보기]
[카카오 친구맺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