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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왜냐면] 새로운 ‘역사과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의 역사적 의미와 미래 과제 / 류승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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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류승렬
강원대 역사교육과 교수

지난해 5월은 온 나라에 환희가 넘쳤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역사교육계도 큰 변화를 겪었다. 지난 정권 적폐의 상징이자 촛불 시민 혁명의 단초가 된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폐기되고,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과 새로운 검정교과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그 성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 및 집필기준 시안’을 접하게 되어 매우 반갑다.

개정 대상인 현행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은 치명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청와대의 권력의지에 따라 일방적으로 강행된 개악, 검정제 폐지에서 국정제 교과서 편찬까지의 졸속 추진, 친일과 유신 독재의 합리화 등을 위한 내용 날조가 대표적이다.

2015년 필자는 현행 교육과정의 ‘시안 검토 공청회’에서 토론자로서 심각한 문제들을 지적했으나, 전혀 반영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묵살되었다. 주요 지적 사항은 첫째, ‘대한민국의 발전’을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바꾼 점. 둘째, 일제강점기를 1910년대/1920년대/1930년대로 나누고 각기 ‘일제 정책 대 민족운동’이란 과거의 ‘수탈 대 저항’의 패턴으로 회귀해 우리 민족을 피동적 존재화 한 점. 셋째, 전근대와 근현대가 현저히 불균형을 이루어 양자의 비중이 대주제는 4 대 3, 소주제는 15 대 12, 주요학습요소는 217(64%) 대 120(36%)으로 편차가 더 벌어졌을 뿐 아니라 어려운 개념이 많은 전근대에 과도하게 치우친 점 등이었다.

그런데 이번 시안은 묵살된 지적 사항을 포함하여 제반 문제를 해소하였다. 새 정권의 입맛에 맞게 교육과정을 바꾼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2011년 8월 이후 누적된 역사과 교육과정의 적폐를 청산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로 바뀐 것도 당연지사다. 그동안의 한국사 교육과정을 보면, 4차(1981) 교육과정에서 ‘민주 국가의 수립’이란 표현이 처음 나와, 5차(1988) 때도 그대로 이어졌고, 6차(1992) 때는 ‘민주정치의 발전’으로 표현이 바뀐다. 7차(1997) 때는 고등학교에 새로 생긴 한국 근현대사에 ‘민주주의의 시련과 발전’으로, 또 이명박 정부 때의 한국사 교육과정(2010, 5월 부분 개정)에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사용되었다.

그런데 2011년 8월 재차 개정되면서 한국사 교육과정에 처음으로 그것도 변칙적으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란 용어가 끼어든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1970~80년대 이후 2010년까지 사용되던 ‘민주정치’, ‘민주국가’, ‘민주주의’ 등의 용어가 비정상적으로 쫓겨났다가 원상회복된 의미를 갖는다.

이제 역사과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대한 인식과 관점의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언제부터인가 정치꾼들은 역사교육을 마치 일확천금의 수단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지난 총선에서는 소위 ‘국정화 전도사’라 불린 이를 집권 여당 대표가 ‘이 시대의 영웅’으로 찬양하며 국회에 입성시키는 기현상도 연출되었다.

무엇보다 비전문 인사들의 현장 역사교육에 대한 부당한 개입과 간섭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특히 일부 정치인이나 언론이 역사교육을 제멋대로 농단하는 사태가 불식되어야 한다. 역사교육계는 역사학계와 연대하여 정치적 목적에 따라 사실 왜곡도 일삼는 일부 정치 세력과 뉴라이트, 보수 언론에 대하여 “역사 연구와 역사교육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역사교육을 당리당략이나 이념 공세의 수단으로 삼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진즉부터 요구했다.

아름다운 꽃밭도 밟기 시작하면 쉬 망가지거늘, 하물며 고의로 마구 짓밟아댄다면 아무것도 남아날 수 없다. 한국의 역사교육계가 갖은 세파에도 굳건히 명맥을 이어온 것은 역사 교사들의 열정과 더불어 학생과 학부모들의 호응이 남달랐던 덕분이다. 더하여 우리 사회는 내 나라 역사를 아끼고 보듬어야 한다는 공통된 신념이 확고하고 강렬하다. 교육과정은 사실 시작일 뿐이다. 글로벌한 안목과 미래지향적 관점을 닮은 바람직한 역사교육이 이루어지도록 지원하고 격려하는 데 모두가 힘을 모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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