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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매경포럼] 금투업계가 `채용비리 청정지역`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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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금융감독원이 지난주 신한금융지주 채용비리 특별검사를 실시한 결과를 발표했다. 총 22건 특혜채용 정황을 발견해 검찰에 이첩하기로 했는데 결과가 흥미롭다. 계열사별 적발 건수를 살펴보면 신한은행 12건, 신한카드 4건, 신한생명 6건 등이다. 신한금융투자에선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런 현상은 신한금투뿐만이 아니다. 앞서 지난 1월부터 금감원은 하나은행을 시작으로 우리, KB 등 4대 금융그룹, 11개 은행 채용비리를 조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채용비리가 금융투자 계열사로 번졌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한 대형 금투사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채용비리가 없었는지 꼼꼼한 내사작업을 벌였다고 한다. 결과는 '제로(0)'였단다.

금투업계에 채용비리가 없는 이유는 내 실적을 갉아먹을 수 있는 신참은 아무도 뽑지 않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도움이 되는 신참은 '고마운 후배'이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내 발등을 찍는 원수'가 된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만나본 대다수 금투업계 종사자는 채용비리 자체에 무관심했다. 내 실적을 챙기느라 남의 일에 신경 쓸 틈이 없다는 설명이었다. 남한테 얹혀서 가는 '프리 라이더(Free rider)'를 용납 못한다는 믿음이 확고하다. 설사 줄을 타고 입사한다고 한들 실적으로 평가받는 금투업계 문화에선 실력이 없으면 배겨나지 못한다.

은행 등도 경쟁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은행권을 취재하며 '누구는 누구 라인이다'라는 얘기를 수없이 들었던 경험을 감안하면 금투업계만큼 공정하고 치열한 것 같지는 않다.

"작년만큼 올해도 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아십니까?"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한 증권사 CEO가 툭 던진 말이다. 그는 "이 세계가 이렇게 살벌한지 알았다면 애당초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 압박에 피가 마른다는 얘기다.

원래 경쟁은 고단한 법이다. 자칫 고삐를 놓치면 인간 존엄성에 깊은 상처를 입힐 수 있다. 과잉경쟁으로 애꿎은 인생이 파괴되는 안타까운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럼에도 경쟁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경쟁이야말로 생존과 번영의 열쇠인 까닭이다. 경쟁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기회와 가치를 만들어낼 때 그 결실을 모두가 함께 누리게 된다는 뜻이다.

경쟁의 미덕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경쟁원리를 좇다보면 부조리도 없어지게 된다. 금투업계가 채용비리 청정지대인 이유는 경쟁 덕분이다. 경쟁에 충실하고, 그 결과를 승복하다 보면 외부 청탁 같은 이물질이 힘을 못 쓴다. 이런 선순환을 위해선 '공정하게 경쟁하되 승자의 몫을 존중한다'는 자본주의 룰만 지키면 된다(물론 낙오자에 대해선 따뜻한 배려가 필요할 것이다).

기자는 한국 경제가 정치에 찌들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바탕을 둔 경제논리를 질식시키고 있다고 본다. 오늘날 한국을 휩싸고 있는 이데올로기는 '경쟁 안 하기' '경쟁 줄이기'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경향은 한층 심해지고 있다. 우리끼리 옹기종기 모여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나눠 먹는 세상은 얼마나 평안할까. 상상은 자유지만 안타깝게도 지구상에 그런 곳은 없다.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도 치열한 경쟁을 마다하지 않은 누군가의 땀을 통해 가능한 법이다.

역설적이지만, 경쟁논리에 투철한 한국 금투업계 종사자들이 그래서 더 자랑스럽다. 이들의 10년 후, 20년 후가 궁금해질 때가 많다. 동남아시아 등 해외시장에서 기를 펴고 실력을 발휘하는 즐거운 상상이다.

예를 들어 현재 베트남에는 미래에셋대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모두 현지법인을 갖고 있다. 키움증권도 현지 증권사 인수를 추진 중이다. 2007년 미래에셋이 처음 진출한 이래 야금야금 영역을 넓히고 체질을 강화해온 것이다. 아직까지 '대박'을 얘기하긴 이르다. 그러나 잠재력은 충분히 확인된 상태다. 경쟁을 꺼리는 한국적 풍토에서 벗어나 한국 금투사들이 해외에서라도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진우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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