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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World & Now] 다케다약품의 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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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68조원. 일본 다케다약품이 아일랜드 제약회사인 샤이어 인수에 내건 금액이다. 2016년 소프트뱅크가 영국 반도체회사인 ARM 인수 때 제시한 금액 약 33조원의 배가 넘는 일본 기업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이다. 연매출 17조원 규모 기업인 다케다약품은 일본 최대 제약업체다. 매출 규모만 보자면 CJ제일제당과 비슷한 수준이다. 글로벌 제약업계(매출 기준 18위)나 일본 재계(시가총액 35위)에서 존재감이 두드러진 회사는 아니지만 도요타도 주저할 도전에 나섰다.

다케다약품은 전체 68조원의 인수대금 중 33조원가량은 대출로 감당하고 나머지 35조원 중 20조원가량은 새로 주식을 발행해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다케다약품과 샤이어가 안고 있던 기존 부채만 30조원인 상황에서 인수를 위한 대출까지 더해지면 빚만 66조원에 달한다.

투자자나 은행이 좋아할 리 없다. 올해 들어서만 다케다약품 주가는 29%나 하락했고 신용등급 역시 A까지 낮아졌다. 회사 측은 샤이어 인수로 글로벌 9위 제약사에 올라설 수 있으며 신약, 그것도 수익성이 높은 희귀병 치료제를 확보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투자자들 불안 없애기에 나섰다. 최종 인수까지 이제 두 회사 주주들의 승인 절차만 남겨놓고 있다.

다케다약품의 인수안이 양사 주주들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또 장기적으로 인수가 독이 되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지는 알 수 없다.

창업 238년째를 맞는 다케다약품은 장수기업들이 그러하듯 보수적인 경영을 해오는 회사였다. 창업가 7대손 다케다 구니오 사장 때까지만 해도 무차입 경영으로 신용등급이 AA+였다. '15년간 출시 신약 제로(0)'라는 벼랑 끝 위기감에 오너가 직접 2003년 전문경영인 하세가와 야스치카를 사장으로 내세웠다. 임기 중 두 번의 해외 기업 M&A를 진행한 하세가와 사장은 2014년 글로벌제약사(GSK) 출신 프랑스인인 크리스토프 웨버를 후임 사장으로 내세웠다. 현재는 14명의 임원 중 사장을 포함한 11명이 외국인인 기업이 됐다. 이 과정에서 창업가 집안이 애지중지하던 자회사도 팔려나갔다. 또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내부개발에 집중하자던 문화는 안 되면 사들여서라도 속도를 높이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일본 기업의 느린 의사결정과 숨 막히는 위계질서는 여전하다. 그러나 지난 30년간의 잃어버린 세월이 갈라파고스 일본에도 진화를 불러왔다. 언뜻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도전에 나선 다케다약품 같은 회사도 생겨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현실은 어떤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우리 기업의 파격적인 도전을 들어본 것이 언제였나 싶다. 노사 갈등, 외국자본 공세, 정부 규제는 커지는 상황에서 후진적인 오너 갑질로 국민적 공분마저 자초하고 있다. 다케다약품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도쿄 = 정욱 특파원 wook@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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