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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앞으로 어떻게 그릴까…청춘에 답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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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서울 방배동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석원 작가. [사진 제공 = 가나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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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부친이 5년째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입원해 있다. 영원한 소년처럼 살 것 같았던 아버지가 사경을 헤매는 것을 보니 연민이 몰려왔다.

14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인기 동물화가 사석원(58)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버지를 보면서 현재가 과연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생각했다. 나 또한 점점 쇠락해가고 소멸돼가는 것 같다. 얼마 전 큰 수술(뇌수술)도 했다"고 말했다. 새로운 동력이 필요했던 그는 에너지가 가장 활발했던 청춘을 돌이켰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림으로 풀어 개인전 '희망낙서'를 열었다. 2015년 이후 3년 만으로 신작 40여 점을 내걸었다.

젊은 시절 그의 표상이었던 호랑이, 부엉이, 소, 당나귀, 코뿔소 등을 새로운 기법으로 그렸다. 과거에는 팔레트를 쓰지 않고 캔버스에 직접 유화 물감을 풀어놓고 호방한 붓질로 그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무 액자 틀과 골판지 상자 등 막대기로 그림을 밀어내 지우고 덧칠했다.

"지운다고 다 지워지지 않아요. 흔적도 남고…. 그걸 발판으로 또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은 희망을 표현했어요. 희망을 덧칠하다 보니까 채도와 명도가 올라가고 색감과 질감이 달라졌죠. 젊었을 때는 계속 뭔가 구축하고 하나라도 잡으려고 두껍게 그렸다면, 이번에는 덜어내고 싶었어요. 잡고 있는 것을 놓는 연습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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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석원 왕이 된 부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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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를 전공한 그는 동물을 좋아해 동물화를 전문적으로 파고들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실망과 좌절의 연속이었던 시절에 그가 동경한 호랑이, 사자, 부엉이, 소 등을 새롭게 그린 작품들을 걸었다. 태극권과 영춘권 자세를 취한 부엉이와 호랑이가 캔버스를 뚫고 나올 것처럼 역동적이다. "공부도 못하고 내세울 것이라고는 몸뚱이밖에 없던 젊은 시절에 무협지와 권법 영화가 유행했어요. 이소령 시대라 영웅, 신(神), 권력에 대한 동경이 많았죠. 그래서 이번에 무림의 제왕이 된 동물들을 그렸어요. 제 존재감이 미약해 지칠 줄 모르는 돌파력과 생명력을 지닌 강인한 소에게도 끌렸어요."

눈보라를 헤쳐가는 어린 사슴 그림은 동양화 작은 붓으로 섬세하게 그렸다. 캔버스를 사용하지만 동양화의 골법육필(骨法肉筆)로 기운생동하는 입체감을 표현했다. 작가는 "난관을 헤쳐가는 청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한다. 당나귀 등에 만발한 꽃은 그의 청춘에 대한 선물이다. 젊은 시절 들끓었던 이성에 대한 욕망도 여성 누드화로 펼쳐냈다. 육감적인 여인들이 무지개와 호랑이, 닭 등과 어우러져 있다. 작가는 "모델 없이 기억을 끄집어 냈다"고 설명했다.

현재 두 자녀를 둔 가장의 무게를 투영한 고릴라 그림은 비장하면서도 애잔하다. 풍랑이 거센 바다에서 고릴라가 염소, 양, 토끼, 말을 껴안고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그 옆에 떠 있는 배에서는 호랑이가 악어를 물고 있다. 고릴라 눈에선 금세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인생이라는 항해에서 외줄타기를 하는 가장의 비애를 표현했어요. 서울 방배동 집과 가까운 과천 동물원에 자주 가는데 고릴라 눈이 사람보다 더 순수하고 깊어요. 연민을 느끼게 하는 눈빛이죠."

작가 특유의 호방한 붓질을 자제하고 세필(가는 붓)로 동물 털까지 섬세하게 묘사했다. 그만큼 감정이 복잡미묘했다. 배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인도네시아 폐자재를 수입해 액자 프레임으로 썼다. 그의 뿌리는 동양화여서 바를 정(正), 노고 노(勞)란 글자를 낙관처럼 써 넣었다.

마지막으로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자 "너무 힘들었던 시절이라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아쉬운 건 있지만 후회 없이 많은 것을 했다"고 답했다. 전시는 6월 10일까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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