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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3 (일)

[인턴열전] "면접장서 심장박동까지 스캔당했다" AI면접 직접 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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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면접, 면접관 대신 모니터와 카메라
우습게 봤다가 10분 만에 ‘멘붕’
지원자 얼굴색·목소리, 심장 박동까지 수집
“공정하다” VS “열정은 평가 못 해”

“조현정씨 들어오세요.”

면접 대기실에서 20분쯤 기다렸을까. 이름이 불렸다. 안내에 따라 면접실 안으로 들어갔다. 보통 기업 면접의 경우 3~4명이 함께 단체 면접을 본다. 이번에는 좀 달랐다. 3.3㎡(약 1평) 공간에 혼자 들어섰다. 면접관 대신 모니터와 헤드셋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좌석에 앉아 헤드셋을 썼다. 헤드폰을 통해 질문이 쏟아졌다. ‘인공지능(AI) 면접관’이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조선일보 디지털편집국 기동팀 인턴기자 2명이 AI 면접을 체험했다. 지난 10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린 ‘일자리드림페스티벌’에서다. 최근 구글·소프트뱅크·유니레버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AI 면접을 도입하면서 현장 열기는 뜨거웠다. AI 면접을 맛보려는 취업 준비생(취준생)의 대기 줄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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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면접관이 지원자의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지 시각화했다. /그래픽=김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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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면접관 우습게 봤다가...10분 만에 ‘멘붕’
인턴 기자들은 과거에도 몇 차례 면접을 본 적이 있다. ‘AI가 압박해봤자 사람보단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벌개지면서 언성을 높이는 면접관보다야 모니터 속 AI가 속 편하지 않겠는가. 오산이었다. 면접 10분 만에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당신에게 중요한 약속이 있는 날, 팀장이 당직을 대신 서달라고 부탁한다. 어떻게 거절할 것인가?” 생각할 시간은 30초, 대답은 60초 이내에 해야 했다.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머릿속이 백지상태로 변했다.
당직을 거절할 수 있을까. 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융통성이나 협동 정신이 없는 직원이 될 것이다. 당직을 대신 서겠다고 할까. AI 면접관이 “그럼 중요한 약속을 포기한다는 말이냐”고 다그칠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 결국 “대신 당직을 설 수 있는 사람을 찾아보겠다”는 평범한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답 없는 질문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졌다. “본인이 백화점 판매원인데 갑자기 고객이 두 달 전에 산 제품을 환불해 달라고 요구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노동 없이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계획적인 삶을 사는 게 성과를 내는 데 중요한가?” 턱하고 말문이 막혔다.
AI 면접에서 활용되는 질문 개수는 5만 4720개. 직군별 맞춤형 질문을 추가할 경우 경우의 수가 43만개까지 늘어난다. ‘예상 답변 만들기’가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것이다.

AI 면접 시스템을 개발한 이승훈 마이다스아이티 기술연구소 HRR개발팀장은 “‘AI면접관’이 던지는 질문에 정답을 말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원자가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고 감정을 전달하는지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 AI 면접관, 얼굴 표정에서 목소리·맥박까지 수치화
‘아...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만 맴돌았다. 손에 땀이 났고, 입술이 타들어갔다. AI 면접관은 지원자의 심리도 잡아낸다. 카메라로 지원자의 표정, 혈류량, 심장 박동, 안면 색상 변화를 분석하는 것이다. 외형뿐만 아니다. 지원자의 음색, 음높이, 호흡 크기, 호흡 속도까지 잡아낸다. 지원자가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를 추출함과 동시에 이것을 4가지 기준(긍정·부정·주관적·객관적)으로 구분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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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기자가 10일 서울 강남구 일자리드림페스티벌에서 AI 면접을 체험하고 있다./ 정윤영 인턴기자


면접시간은 50분. 아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그래도 아는 것처럼 말했다.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받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AI 면접관은 이 순간에도 어떤 질문에 표정이 바뀌는지 목소리가 떨리는지를 분석하고 있었다.

AI 면접은 가벼운 사전 조사로 시작해 심층 면접, 인지 게임 순서로 진행된다. 초반에는 주로 지원자의 성향을 파악한다. 이후 축적한 데이터로 맞춤형 심층 면접을 진행한다. 대답에 따라 상황 대처 능력·직무 역량 등을 평가하는 것이다.

면접 이후 진행되는 인지 게임은 뇌 과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아이큐(IQ)테스트와 비슷했다. 게임 룰을 순식간에 파악, 단시간 내에 해결하는 능력을 측정한다. 면접과는 또 다른 정신적 압박이 있었다. 인지 게임에서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지원자의 집중력·기억력이 어느 정도로 활성화되는지 평가한다. 지원자의 성향이 긍정적인지, 적극적인지, 전략적인지, 성실한지 등도 파악한다고 한다.

50분의 면접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 “아, 망했다”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반응을 살필 면접관이 없다 보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난처한 질문이 나올 경우, 자세나 표정도 ‘솔직하게’ 흐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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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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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자 “채용비리 없어 공정” VS “열정은 AI 면접관이 못 잡아내”
기업들은 속속 AI 면접을 도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롯데그룹, SKC&C, JW중외제약, 한미약품,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 등이 일부 전형에서 AI 면접을 적용하고 있다. 면접뿐만 아니라 서류전형에도 AI 면접관이 활약할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빅데이터를 통해 복제 자기소개서를 감지하는 것은 물론, 주관적인 선입견이 개입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날 인턴기자와 함께 ‘AI면접관’에 당한 구직자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구직자 김모(27)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채용비리가 터지는데, AI면접이 도입된다면 적어도 같은 출발점에서 평가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28)씨도 “면접관의 감정이 섞이지 않는 만큼 공정하게 평가해줄 것으로 생각한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대편에선 “스펙(SPEC·자격,경력)’ 위주의 평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데이터를 기반해서 평가하는 만큼, 지원자의 잠재력보다는 객관적인 기록만으로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구직자 길성훈(30)씨는 “대면 면접만이 지원자의 내면적인 가치나 열정을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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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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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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