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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인터뷰]떠나는 부인을 위해 밥상을 차리다…강창래 작가 “살아가는 과정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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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를 위해 당신이 요리를 해줬으면 좋겠어.”

아내의 부탁을 받은 남편은 묵묵히 부엌으로 들어섰다. 라면 끓이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던 남편은 어색하고 낯선 세계에서 한동안 주춤거렸다. 무엇보다 아내는 아팠다. “원하는 것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요리에 대해 감이 전혀 안 잡히니까 고생했죠. 더욱이 대충대충하면 안 되니까요.”

이달 초 에세이집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루페)를 펴낸 강창래 작가(59)를 만났다. 강 작가의 부인인 정혜인 알마 출판사 대표는 3년여 암투병 끝에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났다. 에세이집은 강 작가가 부인을 위해 해준 요리에 관한 레시피와 후일담을 기록한 것이다. “침샘과 눈물샘이 동시에 젖는다”(서효인 시인)는 평처럼, 이 책은 흔치 않은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5월, 벌써 여러 번 비가 내렸고 강 작가를 만난 날에도 비가 내렸다. “편하게 하세요.” 궂은 날씨 때문에 인터뷰 분위기가 어두워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강 작가가 먼저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에세이집을 보면 그는 콩나물 무침부터 탕수육까지, 다양한 요리를 해낸다. 그것도 뚝딱뚝딱. “좋은 음식은 재료를 잘 이해하고 다룬 음식”이라고 생각한 강 작가는 먼저 공부를 했다. <음식과 요리>라는 10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을 비롯해 여러 음식 관련 책을 읽었다. ‘인문학자’로서 길러진 습관이다. 재료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다음엔 한 음식에 관해 유튜브나 TV 등에서 소개된 레시피들 10여개를 연구했다. 그랬더니 핵심이 보였단다. 평소 “게으른 성격”이라는 강 작가가 요리에 이렇게 열심일 수 있었던 건 무염·저염식을 해야 하는 아내의 상황 때문이었다. “요리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사람은 제가 해주는 것만 먹었어요. 즐거웠죠. 우리가 35년을 같이 살았는데, 안사람은 마지막 3년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함께한 세월이 늘 좋지만은 않았다고 말하는 강 작가는 부인을 위해 요리를 하면서 매달렸던 생각이 ‘콜래트럴 뷰티’(collateral beauty·부수적인 아름다움)’라는 말이라고 했다. 동명의 영화가 한국에선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2016)란 이름으로 개봉했다. “고통스럽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기쁨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 작가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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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중한 출판기획자로, 수십년 인문학 강의와 저술을 해온 강 작가인데도 레시피를 적는 행위가 책 출간으로 이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2016년 10월 무렵부터 약 1년간 페이스북에 레시피를 적었다. 요리 가지 수만 60여가지. “글쓰기를 가르칠 때 ‘일어난 일을 쓰되, 일어난 일을 재구성하거나 의미부여를 하면 좋은 글이 안된다’라고 말해요. 사람의 행위는 모든 것이 정치적이기 때문에 사실을 쓰고 나면 저절로 의미가 생겨나죠. 그렇게 가르쳤는데, 제 글이 그런 사례가 될 줄 생각 못했네요.”

24시간 돌봐야 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는 상황은 쉬이 말로 전할 수 없다. 에세이집에는 고통의 순간을 묘사한 건 몇 부분 되지 않는다. “먹을 수만 있다면” 하고 가정하면서, 요리를 해야 하기에 간절함이 묻어난다. 그는 처음엔 스스로를 위해 요리를 하지 않았다. 인터뷰 당일 저녁, 강 작가는 도수치료 일정이 있었다. “도수치료사가 제게 온몸이 쪼그라들었다고 말하더라고요. 매일 긴장된 상태로 지내다보니 그랬나봐요. 최근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는데, 그땐 그걸 알지 못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레시피를 메모한 건 필요에 의해서였지만, 메모하는 그 순간들은 스스로를 위한 서비스와 같은 것이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내가 나를 위로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건 다른 세상에 들어서는 것과 같죠. 글쓰기가 몸에 베인 것이 그나마 제가 힘든 상황에서 버티게 해준 힘이 된 게 아닌가 생각해요.”

강 작가는 이 책을 내는 과정에서 출판사 대표와 일러스트레이터를 집으로 초대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했다. 이 책의 일러스트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박현수 작가(아메바피쉬)의 부인 김미희 작가가 그렸다. 박 작가는 2015년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김 작가 역시 그림에 슬픔을 직관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강 작가는 김 작가에게도 특별히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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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사람은 적당히 하는 걸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인간적으로 존경했죠. 물론 그런 사람과 같이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요(웃음).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한 얼굴을 보는 걸 너무나 좋아했어요.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런 서비스도 하지 않으면서도, 남에게는 뭔가 해주려고 했죠. 근데 최근에 저도 남에게 뭔가 해주는 걸 참 좋아한다는 걸 느껴요. 지인들은 안사람이 저를 훈련시키고 떠났다고들 해요. 안사람에게 인간적인 빚이 크죠.”

강의를 하고, 책을 펴내고, 언론 인터뷰를 하고…. 과거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만 강 작가는 “삶의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요즘 이렇게 여유가 있다는 것, 집이 평화로워졌다는 것,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슬픈 책을 썼다’고 말해주는 것…. 다 낯섭니다. 어느 책에 보니 우리 삶은 죽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더군요. 우리 모두 시한부 인생인데, 누군가는 그걸 좀 일찍 알게 됐을 뿐이죠. 지난 3년여를 살아간 세월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제게도 위로가 됩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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