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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박근혜와 MB가 쓴 국정원 예산, ‘뇌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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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강희철의 법조외전(23) 전례 없는 특활비 재판

‘국정원 예산 상납=뇌물’ 사상 첫 기소한 검찰

“돈 갔으니 직무관련” 유죄 입증 자신하지만

일부 재판부는 물론 검찰 내부에서도 갸우뚱

“역대 정권 관행이고 ‘뇌물’ 인식 없었다면?”

법원 30일 첫 판단 어찌 나올지 법조계가 주목



한겨레

5월23일 첫 재판 출석을 앞두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주요 혐의 중 하나는 직속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예산을 뇌물로 받아 썼다는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 3월22일 구속 수감에 앞서 서울 논현동 자택을 나서고 있다. 공동취재사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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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직속기관’인 국가정보원의 예산(특별활동비)을 일부 가져오라고 해서 사용했다. 이것이 뇌물수수에 해당할까? 대통령의 요구에 응한 전직 국정원장들은 뇌물을 ‘상납’한 것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한 혐의(특가법의 뇌물 및 국고등손실)로 기소된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에 대한 1심 선고 날짜(30일)가 다가오면서 법원을 쳐다보는 시선이 많다. 법조계 관심은 국정원 특활비의 뇌물죄 인정 여부다. 특활비를 뇌물로 기소한 것은 사법사상 처음이라 선행 판례가 없는 데다 ‘동전의 양면’ 격인 박 전 대통령의 유죄 여부를 가늠해 보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징역 24년형을 선고받은 국정농단 사건과는 별개로 특활비 수뢰 혐의가 추가돼 별도의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박 전 대통령과 같은 혐의로 기소돼 있어 법원의 첫 판단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가중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이 혐의에 유죄가 인정되면 두 전직 대통령은 더욱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

검찰은 유죄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비록 선례가 없긴 하지만 뇌물죄의 구성요건인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직무 관련성은 서로의 직과 업무에서 추단(미루어 판단)되는 것이다. 대통령은 인사권자이고 업무를 총괄하는 사람이며 원장의 임기를 정한다. 돈이 가면 직무 관련성은 인정된다. (이 사건은) 단순 뇌물수수로, 포괄적 직무 관련성만 인정되면 된다.”(서울중앙지검 핵심 관계자, 1월4일 브리핑)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과 전직 국정원장 5명의 공소장과 재판, ‘중간 전달자’로 구속기소된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전 서울남부지검장)의 재판 등에서 어떻게 뇌물죄가 성립되는지를 설명한 바 있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 대통령은 휘하 직속 기구인 국정원(국가정보원법 제2조)의 인사·예산 등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 그런 대통령에 대해 국정원장들은 임명에 대한 보답, 원장직 유지, 직무수행이나 현안 대응·처리 과정에서의 각종 편의를 기대하며 국정원 예산을 빼내 상납했다.

검찰은 이런 입장을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공판준비기일 때도 압축적으로 밝혔다.

“피고인(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직속기관인 국정원에 대해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정원장에 대한 인사권자이기도 하다. 결국 피고인이 받은 국정원 자금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하여 수수한 뇌물로 확인이 되었고….”

검찰은 여론 형성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1월4일 박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하면서 청와대로 간 국정원 예산이 차명폰 구입, ‘문고리 3인방’ 관리비, 대통령 전용 의상실 운영비 등에 쓰였다는 점을 조목조목 소상히 밝혔다. 분명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이지만, 법원의 심증 형성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의도도 포함됐다고 할 수 있다. 국가 예산을 사적 용도에 사용했다면 ‘비난 가능성’은 훨씬 높아지고, 법원도 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돈의 쓰임새와 뇌물죄 성립 여부는 직접적인 인과 관계가 없다. 서울중앙지검 핵심 관계자는 “(국정원 특활비의) 사용처는 공소장에 안 담기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안 담겨 있다. 그건 (범죄) 구성요건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런 ‘특활비 상납=뇌물’ 공식에 법원이 의문을 표시하고 나섰다. 김진모 전 비서관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재판을 주재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의 이영훈 재판장은 지난달 18일 김 비서관 공판에서 검찰에 연이어 질문을 던졌다. 꽤 길지만 쟁점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이 재판에선) 직무 관련성, 대가성이 있다고 명확히 단정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데… 공무원 조직 내부에서 이런 식으로 예산, 자금이 상납 되는 경우 횡령은 되겠죠. 목적 외 예산 사용, 위법한 목적이니까. 그런데 뇌물로 볼 수 있느냐가 궁금합니다… 대가성, 직무 관련성 따질 필요 없이 청와대에서 필요하면 갖다 쓴다고 상호 인식이 된 상태였다면. 국정원 돈을 청와대에서 가져다 쓴 일이 문제 없이 반복된 일이고, 대통령이 휘하 원장에게 받아 쓸 수 있다고 평범하게 생각하는 상황이었다면 직무 관련성은 배치될 수도 있어요.”

재판장의 말은 계속됐다. “(대통령과 국정원장 같은) 특수관계에서 자금 상납이 뇌물이라고 확대하게 되면, 공직사회에서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사람이 (윗사람의) 지시에 의해 쓰는 건 다 뇌물이 돼버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선을 긋자는 겁니다.”

이 말에 검사가 “국정원장 3명 사건이나 이 사건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와는 관련이 없고, 오히려 불법 용도에 쓸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하자, 이 재판장은 다시 반론을 폈다.

“특활비라서, 그런 데 쓰겠다고 해온 거잖아요? 당사자들이 ‘쓰면 들통 날 수 있어’라는, 위법에 대해 인식을 하면서 쓰는 게 아니라 그렇게 써도 되고, 드러나지 않게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돈이라고 생각해서 갖다 썼다면요? 잘못된 건 맞은 데, 대가성, 직무 관련성 인식을 얼마나 했을까 궁금한 겁니다.”

이 말은 유·무죄 판단의 키를 쥐고 있는 재판장이 법정에서 한 것이라 각별한 주목을 받았지만,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니다. 다른 재판에 참여한 변호인들도 비슷한 방어 논리를 폈었다. 국정원 예산이 대통령에게 건네진 사실은 모두 인정하지만, 그걸 뇌물죄로 처벌하려는 검찰 쪽 법리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취지다.

그중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변호인인 황정근 변호사가 재판부에 제출한 ‘변론요지서’의 골자다.(황 변호사는 대법원 송무심의관, 재판연구관, 서울고법 판사 등을 지냈다)

- 대통령은 국정원의 사용자이며 최종 지휘권자이고, 국정원장은 국정원의 운영자다. 이런 특수관계에 비추어 국정원장 몫 특활비 일부를 청와대에 지원해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사용토록 한 것이다. 대통령은 국정원이 생산한 정보도 같은 방식으로 사용한다.

- 국정원장 몫 특활비(연간 40억원) 중에서 일정액을 청와대에 지원해온 것은 역대 정권부터의 관행이다. 이 원장은 부임 후 이헌수 기조실장도 “문제가 없다. 과거에도 그런 지원을 했었다”고 보고해 뇌물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 원장 몫 특활비를 반드시 어디에 쓰라는 지침은 국정원 내부에도 없다. 그래서 사익을 위해 쓰지 않는 한 수령자인 원장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

- 그러므로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경우(형법 제16조)에 해당한다.(형법 제16조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황정근 변호사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저는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고 말했다. 공여와 수뢰는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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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특활비는 수사 개시 때부터 검찰 내부에서도 ‘핫’한 관심사였다. 그동안 검찰은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과 같이 개인의 ‘착복’이 아니면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다. 과거 검찰 고위직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저런 사건의 수사과정에서 특활비가 새어나간 사례는 여러 차례 드러났다. 어느 국정원장이 특활비 일부를 대통령 자제에게 ‘용돈’으로 건넨 경우도 있었고, 계좌추적 과정에서 특활비 일부가 청와대에 ‘꽂힌’ 사실을 확인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수사하지 않았다.

그런 관행의 문제뿐 아니라 법리를 놓고도 검사 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

“국정원은 모든 게 대통령에게 귀속되는 기관이다. 정보도 대통령을 위해 생산되고, 가령 이번에 서훈 원장이 밀사로 북한을 드나들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사전에 조율한 것 등등이 그렇다. 예산도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국정원 예산에 대해서는 기재부 지침에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국정 수행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라고 돼 있지만 결국 개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흔적 남기지 말고 쓰라는 것이다. 개인의 착복이 아니면 용도는 대통령이 쓰나 원장이 쓰나 같다고 할 수 있다. 원장 개인이 쓴 게 아니라 대통령과 나눠서 썼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가져오라고 하면 갖다 주는 게 오랫동안 관행이었다면 법원이 ‘범의’를 인정할지 모르겠다.”(검사 ㄱ)

“저걸 문제 삼으면 검찰 특활비 예산은 어떻게 되나, 그런 염려를 우리끼리 한 적이 있다. 국회를 통과할 때는 분명히 수사에 쓰라고 지정돼 있는 예산인데, 법무부에서 가져다 쓴다. 일단 검찰로 왔다가 (법무부로) 돌아간 적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 보기에 따라서는 검찰총장이 인사권 등 제반 지휘권을 가진 장관에게 특활비를 상납했다고 할 수도 있지 않나. 특활비 수사의 전반적인 취지는 알겠는데, 뇌물로 처벌하는 것은 좀 무리해 보인다는 거다. 대통령 지시를 이행한 김백준이나 이재만·안봉근의 경우는 단순 심부름으로 볼 경우 유죄가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검사 ㄴ)

검찰은 지난 1월 박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하면서 특활비 상납 관행이 전 정권에서는 없었다고 단정했다. “(특활비 상납은) 전부터 해오던 것이 이어졌다기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능동적 지시를 통해 개시된 것으로 보는 게 저희 (검찰의) 입장이다.”(보도자료)

이어진 브리핑에서 오간 문답이다.

기자: 다른 대통령 때는 간 게 없나?

검찰: 저희가 파악한 바로는 없다. 개시 시점 자체가 박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기자: 국정원장 3명이 과거 정권에서 특활비 상납이 있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없다고 하나?

검찰: 들은 적 없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상황이 일변했다. ‘엠비 수사’가 급진전하면서 ‘직전 정권’인 이명박 정부에서도 똑같은 사례가 드러났다. 검찰의 애초 주장과 달리 ‘관행론’이 힘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의 변호인들은 23일부터 본격화할 재판에서 그 전 정권들의 ‘전례’를 방어 무기로 들고 나올 공산이 크다.

국정원 예산 상납을 뇌물로 본 사건은 서울중앙지법의 여러 재판부에 배당돼 있다. 박 전 대통령과 3명의 국정원장은 형사합의32부(재판장 성창호), 이재만·안봉근·김백준·김진모 전 비서관 등 ‘중간 전달자’는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영훈), 이 전 대통령은 형사합의27부(재판장 정계선), 이 전 대통령에게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성호 전 원장과 원세훈 전 원장은 각각 형사합의31부(재판장 김연학)와 형사합의24부(재판장 김상동)에서 심리 중이다.

법관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의외로 간단치 않은 사건이다. 선행 판례도 없고, 피고인마다 재판부가 달라서 판결이 갈릴 수 있다. 결국 고법 거쳐 대법원까지 가야 정리가 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법원은 어떤 결론을 내놓을까. 첫 판단은 이달 30일 오후 2시에 나온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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