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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 (목)

[조성준의 와이드엔터] 칸은 왜? : 완고한 그들, 변화에 동참할까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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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케이트 블란쳇(맨 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을 비롯한 전 세계 여성 영화인 82명이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주 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 레드카펫을 걷고 있다. 칸(프랑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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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국제영화제(이하 칸)를 처음 취재하러 출장 가는 동료 또는 후배들에게 몇 번 다녀왔답시고 건네는 조언이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하지 마라. 그들에게 친절을 기대하지 마라”다.

먼저 “부산국제영화제를 생각하지 마라”는 얘기는 일반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프레스 프렌들리’를 중시 여기는 부산국제영화제와 전혀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칸은 오로지 영화인, 그것도 자신들이 선택한 소수의 영화인만을 위한 축제다. 영화제 기간중 일반 관객들이 초청작을 감상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입장권을 구할 수 없는 일반 관객들은 레드카펫 위 고고한 자태의 영화인들을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봐야만 한다.

취재진에게 친절하지도 않다. 일례로 턱시도와 드레스로 상징되는 공식 스크리닝의 드레스 코드는 기자들에게도 어김없이 해당된다. 행사가 열리기 직전 사진기자들이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화장실로 뛰어가 허겁지겁 정장으로 갈아입는 모습은 기자들이라고 절대 봐 주지 않는 주최 측의 예외 없는 원칙을 잘 설명한다.

칸의 완고한 ‘성품’은 올해 더 심해졌다. 레드카펫 위에서 셀카 촬영을 금지하고, 프레스 스크리닝을 폐지했다. 셀카 촬영이 레드카펫 행사의 엄숙한 분위기를 해치고, 공식 스크리닝에 앞서 마련되는 프레스 스크리닝으로 인해 관람 평이 미리 새어나가는걸 방지하겠다는 의도다.

미투 운동과 인종 차별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지금, 미성년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수 십년째 유럽을 떠 돌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몇 년전 나치 찬양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던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을 각각 지난해와 올해 초청한 것도 시대의 흐름과 정 반대다.

또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장편 경쟁 부문에 올랐던 지난해와 달리, 자국 극장 산업을 의식해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들의 출품을 금지한 결정 역시 변화의 물결에 선뜻 동참하기 꺼려하는 그들의 속내를 드러낸다.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칸의 이 같은 ‘고집’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아마도 ‘예술로서의 영화’ 주도권만큼은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일 것이다. ‘산업으로서의 영화’ 주도권은 할리우드에 내 준지 오래 됐으나, 1895년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으로 상징되는 영화 종주국의 자존심은 지키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같은 태도가 언제까지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당장 지난해부터 칸을 찾은 영화인들의 화두는 할리우드의 신(新) 메이저 스튜디오로 떠 오른 넷플릭스와 아마존이었다. 영화인들 대부분은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넷플릭스와 아마존의 무차별적 자본 공세에 칸도 결국 백기 투항할 것으로 내다봤다.

장편 경쟁 부문 심사위원장인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한 82명의 전 세계 여성 영화인이 영화제 주상영관인 뤼미에르 극장 계단에 모여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더 많은 여성 영화인들의 합류를 응원하는 움직임을 보인 광경 역시 칸의 ‘자의반 타의반’ 변화를 감지하게 된다.

여기서 82명이란 지난해 열린 70회까지 뤼미에르 극장 계단을 밟았던 여성 영화인의 숫자. 그 정도로 칸이 여성 영화인들을 푸대접했다는 걸 의미한다.

산업이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를 고집하고, 자신들의 ‘죄 많은’ 적자를 감싸안으며,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듯한 칸의 향후 행보가 궁금하다. 포기할 수 없지만 낡은 전통과 가치, 가까이하고 싶지 않지만 결코 멀리할 수 없는 미래 사이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조성준 기자 when914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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