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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TOPIC] ‘펜션도 적폐?’ 정부 지침에 생계형 펜션 불똥 우후죽순 펜션 방치하다 느닷없이 ‘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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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정부의 갑작스러운 불법 펜션 단속에 생계형 펜션 사업자들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사진은 강원도의 한 펜션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매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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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경기도에서 8년째 펜션을 운영해온 김 모 씨. 전원생활과 함께 펜션 임대로 노후소득을 보전해왔다. 그러던 김 씨는 얼마 전 시청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김 씨가 운영하는 펜션이 건축 연면적 230㎡(약 70평)를 초과해서는 안 된다는 농어촌정비법을 위반했으니 시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김 씨는 펜션으로 쓰던 공간 일부를 주거공간으로 전용하고 홈페이지에서도 해당 방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그러자 펜션 임대 문의와 수입이 절반으로 줄었다. 김 씨는 “은퇴 자금을 끌어모아 펜션을 운영해왔는데 갑자기 사업을 못 하게 하니 생계가 막막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불법 펜션 단속에 생계형 펜션 사업자들 비명이 잇따르고 있다. 펜션 사업자 등록과 운영에 대해 그간 별다른 단속이 이뤄지지 않다가 갑자기 전수조사를 실시해 시정명령을 내리니 속절없이 사업을 접어야 할 판이라는 하소연이다. 그간 불법 펜션 사업이 횡행함을 인지했으면서도 이를 암묵적으로 방조해온 정부의 관리 책임과 펜션업 관련 법적 미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규제 느슨해 숙박업 절반 이상이 펜션

▷불법 묵인·방조할 땐 언제고…셋 중 하나 위법

펜션은 ‘농어촌민박’으로 분류된다. 농어촌정비법에 따르면 농어촌민박이란 ‘농어촌 관광 활성화·농어촌 주민 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지역 주민이 거주하는 단독주택을 이용해 숙박·취사·조식 등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농어촌 주민을 배려해 지역 주민이 직접 거주하고 건축 연면적이 230㎡만 넘지 않으면 비교적 자유롭게 토지를 이용, 숙박업을 할 수 있게 했다. 이 같은 느슨한 규제 덕분에 펜션 등 농어촌민박은 총 2만5026개에 달해 전국 숙박업소(총 4만7147개) 중 53%를 차지할 만큼 급증했다(2016년 말 기준).

그러나 농어촌 주민의 소득 증대 등을 목적으로 한 농어촌민박의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부합동 부패예방감시단이 전국 기초지자체 147곳 중 농어촌민박이 많은 지자체 10곳을 선정해 총 4492개 중 2180개를 표본 점검한 결과, 718개(32.9%) 민박에서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위반 유형은 무단 용도변경(18.2%), 연면적·동 개수 초과(7.8%), 실거주 위반(6.9%) 등이었다. 부패예방감시단은 “농어촌민박들은 대부분 민박 대신 펜션이라는 상호를 사용하고 있다. 점검 대상 10개 시·군 모두에서 위반 비율이 21~50%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후 농림부는 전국 지자체에 불법 펜션 단속 전수조사를 명령했고 앞의 김 씨와 같은 사례가 곳곳에서 적발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도 광주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점검 대상 펜션 61곳 중 43곳에서 불법 운영 사례가 확인돼 불법 펜션 비율이 무려 70%를 넘겼다.

▶관련법 허점·정부 관리 책임 도마 위에

▷하루 전 전입해도 설립 가능…농어촌 주민은 뒷전

펜션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단속으로 인해 생계가 끊길 위기에 처했다며 하소연한다. 그간 불법 펜션 설립과 운영을 방조해온 정부가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모든 불법 펜션을 소급 적용해 단속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

경기도에서 생계형으로 펜션을 운영하는 한 사업자는 “펜션은 최신 설비와 넓은 방을 확보해야 소비자들이 찾아오는 장치 산업이다. 토지 매입, 건축, 시설 투자, 직원 고용 등에 수억원을 들였는데 230㎡ 미만으로 운영해서는 실질적으로 투자 대비 수익을 내기 어렵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 펜션이 230㎡를 넘거나 무단 용도변경을 해서라도 영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자체도 그간 이를 알면서도 이렇다 할 단속이 없어 업계 관행처럼 굳어졌다. 지금도 노후 보장을 앞세워 펜션을 분양 중인 건설사가 많다. 그런데도 갑자기 펜션을 ‘적폐’로 규정하고 단속하면 생계형 펜션 사업자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라고 말했다.

일선에서 단속 업무를 맡고 있는 시·군청의 담당 공무원들도 정부 지침에 따라 불법 펜션 단속을 하기는 했지만 정책이 뜬금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도의 한 농어촌민박 담당 공무원은 “농어촌민박의 불법 운영 단속은 원래 각 시·군에서 매년 상·하반기에 실시, 상급기관에 보고하게 돼 있다. 상급기관에서는 그간 소방·위생·대피시설 등 안전점검 위주 단속을 주문해왔을 뿐, 무단 용도변경이나 실거주 위반 등의 항목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불법 펜션 단속에 대한 정확한 가이드라인이 없었던 셈”이라며 “지난해 국무조정실에서 시범 조사를 한 뒤 농림부에서 교육 교재가 하달돼 비로소 단속이 시작된 형국이다. 오랫동안 방조해온 관행을 갑자기 세세한 사항까지 단속하라고 하니 애로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한 공무원은 아예 작심한 듯 농어촌민박 관리를 규정한 농어촌정비법의 제도적 허점을 꼬집었다.

“현재 법령으로서는 농어촌민박 운영자의 등본상의 거주지가 해당 지역이고 펜션 규모가 230㎡ 미만이기만 하면 된다. 농어촌민박 등록 신청 하루 전에만 거주지를 옮기거나, 230㎡가 넘는 펜션 건물을 지어놓고 ‘이 중 일부만 펜션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하면 펜션 운영을 승인해줄 수밖에 없다. 사실은 사업 목적으로 도시에서 왔고, 승인을 받으면 분명 건물 전체를 펜션으로 활용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법대로 하라’며 언성을 높이면 제지할 방법이 없다. 농어촌민박이 실제 지역 주민들의 소득 증대 목적으로 운영되려면 농지원부(농지 소유·이용증명서)나 농어촌 지역에서의 최소 거주 기간을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그럼에도 주무부처인 농림부 측은 지자체가 감독을 소홀히 한 탓이라며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어촌정비법상의 규정을 어겼다면 그간 농어촌민박에 대해 안전점검 위주 지침만 내려보냈더라도 지자체 담당자가 알아서 단속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선 공무원들은 단속의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경기도 한 농어촌민박 담당 공무원은 “시·군청에서 농어촌민박 업무를 담당하는 인력은 대부분 1명이다. 그마저도 다른 업무와 병행하고 있어 관할 지역 내 수백 곳이나 되는 펜션들의 현장점검이 쉽지 않다. 현장점검을 나가도 ‘펜션으로 활용하는 공간이 아니다’라고 잡아떼면 단속하기 힘들다. 때문에 홈페이지상으로만 점검하는 경우가 적잖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렇자 일부 펜션 사업자들은 무단 용도변경한 펜션 공간을 해체하기보다는 당장 홈페이지에서 임대하는 방을 몇 개 내리는 식의 ‘땜질 대응’에 나섰다. 이미 수억원을 들여 펜션에 투자한 데다 달리 출구전략이 없으니 일단 소나기라도 피해 가겠다는 심산이다.

▶생계형 펜션 사업자 출구는 열어줘야

▷개선 계도 기간 부여·숙박업 규제 완화 필요성 대두

현장에서는 농어촌정비법의 허점과 정부의 관리 부재 탓에 농어촌민박이 사실상 펜션업으로 변질된 만큼 일방적인 단속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업계 관계자는 “농어촌민박업 취지에 반하거나 편법으로 운영되는 펜션에 대한 규제는 법규상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다는 점에서 일면 옳은 방향이다. 그러나 이미 대부분의 농어촌민박이 펜션으로 운영되고 있고 생계형 펜션 사업자들이 대거 시장에 진입했다. 이런 현실을 초래한 데는 정부 책임도 적잖다는 점에서 규제 일색으로 몰아붙이는 것보다는 개선을 위한 계도 기간을 부여, 생계형 사업자들의 출구를 열어줘야 한다. 또 전 세계적인 공유 민박업 확산 추세를 감안해 농어촌민박과 분리된 펜션업 또는 새로운 민박업 형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농어촌민박 담당 공무원은 “농어촌 지역에서 숙박업은 계획관리지역 일부에서만 허용되고 도로에서 일정 거리 이상 이격돼야 하는 등 규제가 까다롭다. 때문에 숙박업을 하려던 이들은 자격 요건이 느슨한 농어촌민박으로 몰리게 됐다. 까다로운 숙박업 규제를 완화하면 불법 펜션 창업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8호 (2018.05.16~05.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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