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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CEO LOUNGE] 남북경협TFT 진두지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금강산 등 7대 대북사업 독점권 금값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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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코노미

1955년생/ 경기여고/ 이화여대 사회학 학·석사/ 1983년 페어리디킨슨대 인간개발론 전공/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 회장/ 2008년 현대증권 이사회 의장/ 현대그룹 회장(현)


지난 4월 27일 남북 정상이 11년 만에 얼굴을 맞대고 악수하는 순간,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 사무실은 박수와 환호로 가득 찼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63)도 만면에 미소를 감추지 않았다. 어쩌면 10년간의 힘겨웠던 나날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훔쳤을지 모를 일이다.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한반도가 들떠 있다. 증권가에서는 남북 경제협력 주식이 날아오른다. 이런 분위기를 가장 즐길 만한 CEO를 꼽으라면 현정은 회장이 단연 1순위일 것 같다.

현대그룹은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남북경협’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현대그룹의 북한과의 인연은 꼭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북사업은 고향이 이북인 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숙원사업이었다. 그는 1998년 이른바 ‘소떼 방북’을 성사시켰다. 정 명예회장은 그해 6월 500마리 소떼를 직접 몰고 방북했고, 같은 해 10월 2차로 소 501마리를 북한으로 보냈다.

당초 직원들은 500마리를 준비했다. 정 명예회장이 ‘정(情)’을 담아 한 마리 더 추가했다. 500마리는 끝이 ‘0’이라 끝나는 의미가 있어서 싫다고 했다. 그는 새로 시작하자는 의미를 담아 ‘1’을 만들어 대북사업에 나섰다.

정 명예회장 바람대로 소떼 방북은 남북 경제협력의 단초가 됐고 같은 해 11월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사업이 시작됐다. 승객 1360명을 태운 금강호가 강원도 동해항을 떠나 북한 장전항에 도착하는 ‘금강산 프로젝트’가 첫발을 내디뎠다. 이는 2003년 개성공단 개발과 2007년 개성 관광 개시 등으로 이어졌다. 소떼 방북이 남북 민간 교류의 물꼬를 트는 기념비적 사건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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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엘리베이터 주가 2배 폭등

쪼그라든 그룹 위상 높일 전환점

현정은 회장에게 대북사업은 운명과 같았다. 현 회장은 2003년 남편인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의 갑작스러운 사별을 겪었다. 세 자녀를 둔 가정주부에서 ‘자의 반 타의 반’ 그룹 총수로 변신했다. 현 회장은 운명처럼 다가온 대북사업을 잘 이끌어갔다.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했던 금강산 관광은 예상 밖 사건으로 무너졌다. 2008년 7월 남한 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며 사업은 멈췄다. 2009년 현 회장이 직접 달려가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지만 사업을 살리지 못했다.

대북사업이 중단된 후 10년간 현대그룹은 극심한 경영난에 시달렸다. 현 회장은 2003년 회장에 오르자마자 이른바, ‘시숙부의 난’ ‘시동생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바 있다. 시숙부였던 정상영 KCC 회장이 현대그룹 경영권을 공격했다. 2006년에는 시동생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의 지분을 매집했다. 현 회장은 범현대가의 공세에도 잘 버텼으나 대북사업 중단에는 손을 들고 말았다.

2010년 성장동력을 마련하고자 현대건설 인수를 추진했지만 실패했고, 2016년 그룹 주축이던 현대상선이 경영 악화로 산업은행 산하로 들어갔다. ‘알짜 증권사’로 평가받던 현대증권도 팔았다. 그룹 인력 70~80%가 회사를 떠났고 한때 재계 1위에서 이제는 사실상 중견기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극도로 힘겨운 상황에서도 현 회장은 ‘아픈 손가락’인 대북사업을 놓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경협만 재개한다면 다시 한 번 그룹의 ‘비상(飛上)’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2000년 북측과 합의해 철도·통신·전력·통천비행장·금강산 물자원·주요 명승지 종합 관광사업(백두산·묘향산·칠보산) 등 7대 SOC(사회기반시설) 사업권을 획득했다. 원산·통천지구 협력사업 개발에 관한 합의도 맺었다.

계약 관계뿐 아니다. 북한에 밝은 인사들은 북한이 정서적으로 현대그룹에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북한에 가장 먼저 다가간 기업이 바로 ‘현대’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남북경협이 다시 시작되면 북한 당국이 ‘현대그룹 최우선 정책’을 펼 것이라고 예상한다.

증권가는 이런 평가를 숫자로 말해줬다. 현대아산 지분 67.6%를 갖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남북 화해 무드와 함께 단기간 급등했다. 지난 3월 5일 종가 기준 5만6500원이었던 주가는 5월 9일 기준 10만8500원을 기록했다. 100% 가까이 뛰며 남북경협 최대 수혜기업이라는 점을 보여줬다.

현정은 회장은 수차례 남북경협 사업을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혀왔다.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과 공동 번영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이라면서 “남북 교류의 문이 열릴 때까지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담담하게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직후만 해도 ‘부화뇌동하지 말라’며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경협이 쉽게 성사되리라 낙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북회담 성사를 앞둔 요즘 들어서는 적극적으로 준비하겠다는 각오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그 첫걸음은 남북경협 사업 태스크포스팀(TFT) 가동을 본격화한 것이다. 이번에 출범하는 ‘남북경협 사업 TFT’는 현정은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현대아산 대표와 그룹전략기획본부장이 대표위원으로 실무를 지휘한다. 계열사 대표들은 자문 역할을 담당한다. 실무 조직으로는 현대아산 남북경협 운영 부서와 현대경제연구원 남북경협 연구 부서, 전략기획본부 각 팀, 그룹커뮤니케이션실 등 그룹과 계열사 경협 전문가들이 역량을 총집결해 남북경협 사업의 주요 전략과 로드맵을 짤 계획이다.

현정은 회장은 TFT 출범과 관련해 “남북경협 사업을 통해 남북 화해와 통일의 초석을 놓고자 했던 故 정주영 명예회장과 故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잘 받들어 계승해나가자”며 “남북경협 사업 선도 기업으로서 지난 20여년간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신중하면서도 주도면밀하게 사업 재개 준비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금강산·개성 관광, 개성공단은 물론 향후 7대 SOC 사업까지 남북경협 사업 재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할 것”이라며 “TFT는 현대그룹의 핵심 역량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 남북경협 사업의 구심점이 돼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북한 핵무기 실험 도발로 미국을 필두로 전 세계가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는 상황이라 남북 정상이 만났다는 것만으로는 쉽사리 경협 재개를 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과의 경제협력을 위해서는 미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러시아를 비롯한 유엔 전체의 지지와 제재 철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기대와 희망을 갖고 가슴 벅찬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며 “지난 10년간 사업 중단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의지와 확신으로 준비해온 만큼 가장 빠른 시일 내 재개할 수 있도록 철저히 대비하겠다”고 말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 일러스트 : 강유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8호 (2018.05.16~05.2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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