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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정윤아의 컬렉터의 마음을 훔친 세기의 작품들] 1920년대 파리 홀린 중국 작가 ‘산유’ 동양적 여백미로 서양식 누드화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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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자신의 파리 아파트에서 소담하지만 즐거운 저녁식사를 마친 그는 여느 날처럼 평소 읽던 책을 갖고 침실로 향했다. 그것이 생의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제대로 잠기지 않은 부엌 스토브 가스가 누출되면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했다. 유럽의 내로라하는 천재들이 각축을 벌이던 20세기 초반, 서예 기반의 우아한 화풍으로 파리 미술계에서 빛을 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산유(Sanyu, 1901~1966년) 얘기다.

중국 사천 지역의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덕에 산유는 어려서부터 유명한 선생님에게서 시와 서예를 배울 수 있었다. 이는 훗날 그의 예술 세계에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됐다. 서예에서 비롯된 간결하면서도 자연스럽고 정직한 선과 풍부한 시적 감성이야말로 산유 예술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예술 창조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했던 당시 파리 미술계에서 이것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창적인 회화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근간이 됐다.

매경이코노미

산유의 1929년작 ‘두 명의 서 있는 누드(Two Standing Nudes)’. 여백을 존중하는 서예 정신을 서양의 오랜 전통인 누드화 속에 담아낸 작품. 2013년 5월 25일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경매에서 약 60억원에 낙찰됐다. ⓒ 2017 Christie's Images Limited.


1929년작 ‘두 명의 서 있는 누드(Two Standing Nudes)’를 보라. 누드는 서양미술의 아주 오래된 전통 주제다. 하지만 산유의 누드화는 누드라는 점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측면에서 매우 새롭다. 우선 두 명의 여자를 보면 현실적인 재현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이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주목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여인들의 섹슈얼한 매력인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전통 누드화는 부드러운 피부 표현과 성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그림은 그보다는 과감한 형태와 구성에 집중한다. 각기 다른 곳을 향한 두 인물의 무심한 시선, 배경과 인물의 대범한 구성적 관계 등을 통해 관객은 관능미보다는 단순하면서도 우아한 화풍에 이끌리게 된다.

스무 살 무렵, 국비장학생으로 파리 유학길에 오른 이래 평생을 그곳에서 작업하면서 산유는 서양미술을 흉내 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가 자신의 뿌리인 아시아 미술의 정신을 서양의 매체인 유화 속에 담아내고자 한 노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다. 여인들의 풍만한 나체를 표현한 간결한 선은 서예의 일필휘지 전통을 따른다. 또한 하얀 커튼과 검은색으로 과감하게 처리된 배경은 먹을 통해 드러나는 검은 글씨와 종이의 하얀 여백의 관계를 작품의 주요 요소로 다룬 서예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여백을 버려진 죽은 공간이 아닌, 작품의 살아 있는 일부로 받아들인 아시아 미술의 전통이 산유의 작품 속에서 현대적으로 되살아났다. 게다가 커튼에는 사슴, 대나무, 물고기 등 전형적인 아시아 문양을 넣어 자신이 아시아의 예술가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아시아와 서양의 만남이 이보다 더 조화롭게 표현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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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병에 꽂힌 국화꽃(1950년대)’. 2016년 11월 26일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경매에서 약 141억원에 낙찰됐다. 산유는 누드 이외에도 우아한 정물화로도 정평이 나 있다. 일필휘지로 그려진 꽃이나 나뭇가지와 여러 색을 쓰지 않고 절제된 표현 속에 수묵화의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 2017 Christie's Images Lim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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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 회화의 이 새로운 아름다움에 당대 유명 화가들을 비롯, 파리 미술계가 매료됐다. 그중 아주 열성적으로 그의 작품을 옹호한 사람은 학자 겸 컬렉터이자 화상으로 명성이 자자했던 앙리-피에르 로셰(Henri-Pierre Roche, 1879~1959년)가 대표적이다. 그는 뛰어난 혜안으로 1906년, 무명이었던 스물다섯의 젊은 피카소를 발굴해 스타덤에 오르게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산유의 ‘두 명의 서 있는 누드’를 본 순간, 그는 망설임 없이 구매를 결정했고 이 작품은 곧 그의 애장품 가운데 한 점이 됐다. 로셰가 소장한 다른 산유 그림들과 더불어. 서양미술에 정통한 그가 어떻게 편견 없이 멀리 중국에서 건너온 화가의 작품을 그토록 높게 평가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당대 사회 분위기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진 유럽에서는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현재를 최대한 즐기자는 사회적 태도가 급격히 확산됐다. 특히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부상한 파리에서는 ‘광란의 20년대(Les annees folles)’라는 용어가 생겨날 정도로 예술 문화를 포함해 사회 전반에 새로움에 대한 열망이 폭발적으로 표출됐다. 미니스커트가 대유행하고 화려한 장식 미술이 번성했다. 또한 이국적인 문화를 창조의 원천으로 수용하면서 아시아 문화를 향한 높은 관심이 형성돼 있었다. 중국 도자기와 명나라 시대 가구 등이 지식층 파리지앵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 것이 그 일례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혁신’은 당대 모든 예술가들의 키워드가 됐다. 전통에 기반을 두되 완전히 새로운 현대적 ‘미’를 제시하는 혁신적인 예술가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 이처럼 ‘미’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화두로 삼았던 시대였고, 게다가 로셰는 미학적으로 최전선에 있는 아방가르드 예술을 추구했던 뛰어난 혜안의 컬렉터 겸 화상이었다. 어찌 그가 아시아 정신에서 출발한 산유의 현대적이면서도 단아한 작품을 놓칠 수 있었겠나. 로셰는 집안의 지원이 끊겨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산유를 위해 그의 작품을 유럽 전역의 명성 있는 컬렉터들에게 열정적으로 소개·판매했다. 그 자신도 100점이 넘는 산유의 유화를 소장했다. 로셰의 컬렉션 규모는 상당했다. 그는 많은 소장품들 가운데서도 산유와 마티스의 작품을 특히 아꼈고 거실에 이 두 화가의 작품을 나란히 걸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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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 가격의 급상승으로 인해 산유의 종이 수채화나 연필 드로잉들 역시 높은 인기를 누리며 가격 상승을 동반하고 있다. 주로 누드를 그린 드로잉들 역시 아시아 미술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산유의 노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100여년의 세월이 흘러 2013년 5월 25일, 로셰의 거실에 걸려 있던 산유의 ‘두 명의 서 있는 누드’가 크리스티 홍콩 이브닝 경매에 출품됐다. 로셰가 죽은 후, 후손에 전해지던 이 작품은 1984년 파리의 작은 현지 경매회사에 나왔다. 여기서 작품을 구매했던 컬렉터가 30년 넘게 소장하고 있다 다시 경매에 출품한 것이다. 산유 특유의 부드러운 핑크톤과 간결하지만 순수한 우아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치열한 경합 끝에 60억원이 넘는 금액(4467만홍콩달러)에 낙찰됐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작품을 갈구하는 컬렉터들의 열망은 점점 높아져갔다. 2016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출품된 산유의 정물화는 높은 추정가를 훨씬 웃도는 141억원이 넘는 금액(1억358만홍콩달러)에 낙찰돼 큰 화제가 됐다. 어두운 배경을 바탕으로 노란 국화꽃이 유리병에 무심하게 담긴 정물화. 이것 역시 아시아 정신을 서양의 매체인 유화에 담아낸 산유 회화의 백미를 보여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정윤아 미술평론가]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57호 (2018.05.09~05.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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