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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건축계 노벨상, 공동체·인간성 회복에 눈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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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츠커상의 모든 것-

하얏트재단 가문서 상 이름 따

건축가·외교관·법관·기업인 등

다양한 직업군 5~9명이 심사

수상자 ‘스타 건축가’ 총망라

미·유럽 ‘스타’ 의존 흐름 벗어나

지역성·사회성 강조 건축가들 조명

올 40회 수상자는 인도인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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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크리슈나 도시가 설계한 인도경영대학원(IIM). 인도 방갈로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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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40번째를 맞는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시상식이 16일 캐나다 토론토의 아가 칸 뮤지엄에서 열린다. 올해 수상자인 발크리슈나 도시는 1979년 첫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인도인으로선 처음으로 수상했다. 본래는 매년 건축가 1명에게 상을 주는 것이 관례지만, 1988·2001·2010·2017년에 복수의 공동수상자가 나왔기 때문에 도시는 프리츠커상을 받는 45번째 건축가의 영예를 안았다. 프리츠커상 위원회는 주로 미국·유럽 등지의 ‘스타 건축가’들을 조명했던 흐름에서 벗어나 최근엔 지역성, 생태, 사회성을 강조하는 건축가들에게 눈길을 돌리고 있다. 2018년 수상자 도시 역시 인도의 도시지역 서민들을 위한 공동주택 설계에 힘을 쏟은 건축가다. 프리츠커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명성과 권위를 얻게 됐는지, 최근 주목하고 있는 건축의 흐름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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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크리슈나 도시가 설계한 상가트 건축사무소. 인도 아마다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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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성과 개방성 프리츠커상은 세계적 호텔 체인 하이엇(하얏트)재단을 이끈 프리츠커 가문에서 이름을 따왔다. 마천루의 탄생지인 시카고 출신인 프리츠커 가문은 “건축예술을 통해 재능과 비전, 책임을 실천하고 인류와 건축환경에 꾸준히 공헌해온 전세계의 살아 있는 건축가들을 기리고자” 이 상을 제정했다. 하지만 공정성을 위해 수상자 선정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시상식 장소 등만을 결정한다. 다른 건축상과 달리,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건축가·디자이너뿐 아니라 법관·외교관·기업인 등 다양한 경력을 지닌 5~9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심사위원단은 역대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글렌 머컷(2002년) 위원장과 리처드 로저스(2007년), 세지마 가즈요(2010년), 왕수(2012년)를 비롯해 스페인에서 활동하는 여성 건축가 베네데타 탈리아부에, 미국의 대법관 스티븐 브라이어, 브라질 외교관 안드레 아라냐 코헤아 두 라구, 영국 대영예술위원회 위원장인 피터 팔룸보, 인도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이다. 건축가로서의 전문성만 중시하지 않고 시대적 맥락을 읽고 수상자를 선정하기 위해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심사위원으로 선정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심사위원은 모두 건축에 대한 이해와 관심, 소양을 갖춘 사람들로 이뤄져 있다. 라탄 타타 역시 대학에선 건축공학을 전공했다. 후보자 선정 방식은 매우 개방적이다. 재단 전무는 역대 수상자, 건축가, 학자, 비평가, 정치인,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후보자 추천을 받지만 건축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전세계 누구나 후보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서 재단 전무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매년 11월 이렇게 추천을 받으면 심사위원들은 이듬해 연초부터 심사를 시작하는데, 수상자 선정에 앞서 세계 각지의 건축물들을 직접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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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수상자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유시(UC) 이노베이션 센터. 칠레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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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로 아라베나가 설계한 빌라 베르데 주택. 칠레 콘스티투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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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건축가의 인증마크로 역대 수상자들 명단을 보면, 전세계 ‘스타 건축가’가 총망라됐다. 첫번째 수상자인 필립 존슨은 링컨센터·시그램빌딩·에이티앤티(AT&T) 본사 등 뉴욕 도시건축사에 한 획을 그은 설계자다. 고층 빌딩에 쉽고 친숙한 고전주의 양식도 과감하게 도입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리더이기도 하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대표 작품과 건축가들을 짝지어 언급해보자. 20세기 프랑스의 문화 르네상스를 이끈 미테랑 시대를 대표하는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자인 이오 밍 페이(이 작품은 애초엔 ‘사회주의자의 무덤’이라는 조롱을 받기까지 했지만 곧 루브르의 고전적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19세기 말 지어진 베를린 제국의회(국회의사당) 개축을 맡아 에너지 효율 등의 기능성과 빛의 공학적 아름다움을 구현한 노먼 로버트 포스터, 컴퓨터 프로그램의 힘을 빌려 우연과 영감에서 길어낸 자유로운 곡선을 표현한 스페인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프랭크 게리, 혼돈과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파격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진정한 의미에서 ‘건축 세계화’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렘 콜하스, 이슬람과 가톨릭의 문화를 대비·조화시키며 카메라의 조리개 원리를 창문에 응용한 파리 아랍문화원의 디자이너 장 누벨, 단순함과 소박함이 어떻게 우아함으로 꽃피어나는지 보여준 발스 온천장(완공된 지 2년 만에 문화재로 보호받을 만큼 스위스인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을 빚어낸 페터 춤토어, 건물의 안과 밖을 뒤집은 듯한 도전적 자태로 파리라는 도시의 역사성에 충격을 던진 조르주 퐁피두 센터의 공동 설계자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빛의 교회, 물의 교회 등에서 보듯 극도로 절제된 구조체에 빛을 끌어들이는 공간의 연출가 안도 다다오, 템스강변의 화력발전소를 ‘산업시대의 대성당’으로 변화시킨 테이트 현대미술관의 자크 헤어초크, 피에르 드 뫼롱 등등.

그러나 국경을 넘나들며 자기만의 스타일이 새겨진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들을 주로 선정해온 프리츠커상의 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 ‘이제쯤 상을 받을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스타들 대신 자신이 속한 나라, 사회의 지역성·환경·빈곤·재난 등에 대응하는 건축을 모색하는 이들을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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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시게루가 이재민들을 위해 설계한 종이 통나무집. 인도 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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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짙어진 사회적 감수성 변화의 바람은 2011년 포르투갈의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로부터 감지됐다. “건축가의 가장 큰 소망은 익명이 되는 것이다. 거짓·겸손에서 나온 익명이 아니라 수천년에 걸쳐 축적된 지혜를 담은 공간을 주어진 시간에 가까스로 창조함으로써 익명이 되는 것 말이다”라고 말하는 모라는 포르투갈의 지형과 자연, 문화적 전통을 존중하는 건축가다. 이듬해엔 항저우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중국 건축가 왕수가 수상자에 선정되는 파격이 빚어졌다. 당시 한국 건축계에선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전라남도 어느 지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쯤 될 것”이라며 낯설어했고, 위세등등해진 중국의 국력이 작용한 결과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프리츠커위원회는 중국의 건축 전통과 형태를 현대 건축물에 녹여온 그의 노력을 높이 샀다. 2014년 수상자인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에 이르면, 21세기 세계인이 접한 위기와 절망에 대한 건축적 응답에 프리츠커위원회가 귀 기울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 시게루는 1994년 르완다 내전 때 수백만명 난민을 위해 종이로 임시거처를 만든 것을 시작으로 20여년간 전세계의 재난 현장을 돌면서 이재민을 위해 종이로 만든 집을 지었다. 2011년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지진 때 지은 종이 성당의 아름다움, 같은 해 동일본 대지진 당시 피해 주민들에게 제공한 종이 칸막이에 깃든 휴머니즘은 건축적 재능이 방향성을 얻을 때 어떻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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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R이 설계한 스페인 지로나주 올로트에 있는 개인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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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프리츠커상은 칠레의 ‘사회 참여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에게 돌아갔다.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는 칠레 북부 이키케에서 작업한 ‘빈민을 위한 공동주택 프로젝트’다. 각 세대에 돌아가는 정부의 건축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자, 그는 절반만 완성된 주택을 짓고 나머지는 주민들의 벌이가 나아지면 스스로 증축·개축할 수 있도록 했다. 아라베나는 “진정한 설계란 사람들 스스로 건축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스페인의 RCR(라파엘 아란다, 카르메 피헴, 라몬 발랄타) 수상 소식도 건축계에선 깜짝 뉴스였다. 이들 세 사람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대형 빌딩을 주문받거나 유명한 설계 경기에 당선된 적이 없다. 스페인의 소규모 건축물을 주로 설계해왔지만,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자연 속에서 달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육상 트랙, 움푹 파인 화산 지형 속에 건물 터를 잡고 이전 터에 남아 있던 돌을 건축 재료로 삼은 레스토랑 등은 작지만 매력적인 공간의 전범을 보여준다.

올해 수상자인 발크리슈나 도시는 서양의 유명 건축가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오히려 수상이 늦은 감이 있을 정도로” 인도의 유구한 전통을 살린 건축과 도시 빈민들을 위한 집합주택 설계로 모범을 보인 원로 건축가다. <프리츠커상을 빛낸 현대건축가>를 펴낸 송준호 인덕대 교수는 “프리츠커위원회는 ‘조형성’을 위주로 한 시상은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건축의 사회성, 공공성에 대한 존중을 강하게 피력했다”며 “‘상의 권위에 지나치게 기대 프리츠커상을 받은 스타 건축가라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한국의 분위기는 바뀌어야 하지만 앞으로 한국의 건축가들도 세계 건축문화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사진 프리츠커위원회 누리집 www.pritzkerpriz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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