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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기자의 시각] '판문점 선언' 어기면 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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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명성 정치부 기자


통일부는 지난 12일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판문점 선언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으로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자유북한운동연합이 파주에서 전단 15만장과 USB 1000개 등을 대형 애드벌룬을 이용해 북쪽으로 날려보낸 데 대한 반응이었다.

통일부는 지난 4일에도 이 단체의 전단 살포에 대해 판문점 선언 위반을 거론하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성명을 냈다. "유관 부처와 합동으로 대처해나갈 예정"이라며 공권력을 동원해 살포를 제지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통일부의 이 같은 강경 입장은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행위를 사실상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인 '판문점 선언'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를 비롯한 모든 적대 행위들을 중지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이는 가급적 존중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화 국면에서 굳이 북한을 자극할 필요가 있느냐"는 여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은 정식 법률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남북 정상의 '정치적 선언'일 뿐이다. 정부가 이를 근거로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막을 권한은 없다. 2015년 법원은 경기 북부 지역 상인들이 낸 전단 살포 저지 가처분 신청을 '표현의 자유'를 들어 기각했었다. 그러면서 "대북 전단 살포 자체는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하는 영역 안에 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명시했다.

일각에서는 휴전선 부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전단 살포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군이 전단 살포 사실을 사전에 파악한 경우 전단이 실린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포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16년에 "전단 살포가 휴전선 부근 주민들에게 위험을 야기할 우려가 있을 경우 국가가 제지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도 전단 살포 자체를 위법이라고 규정한 것은 아니다. 탈북 단체 관계자는 "정부가 '주민들의 안전 등을 고려해 최대한 조용히 진행해달라'는 등의 요청을 하면 얼마든지 협조할 수 있다"며 "하지만 판문점 선언과 다르다고 우리를 바로 범죄자 취급을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탈북자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날리는 이유는 남북 관계를 훼방 놓기 위해서가 아니다. 북한 정권의 정보 통제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더 외부 정보를 북한 주민들에게 유입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판문점 선언 어디에도 '북한 주민의 알 권리 개선'과 관련한 내용은 없다. 남북 관계 개선을 이유로 전단 살포에 '불법' 낙인을 찍는 것이 북한 주민들을 바깥세상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김명성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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