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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시론] 지역 대학 살려면 '작고 강한 대학'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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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 입학생 30만명으로 급감, 정원 못 채운 私立大 도산할 수도

日은 1000명 미만 지역대학 많아… 중앙·지방정부 지원도 검토 필요

조선일보

김도연 포스텍 총장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우리 대학 모두는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변화와 혁신에 진력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맞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재정 파탄을 눈앞에 둔 사립대학이 지역(지방)에 특히 많다는 점이다. 현재 대학생 네 명 중 세 명은 사립대학에 다니는데, 그중 절반 이상은 지역에 있다. 이렇게 된 데는 나름 연유가 있다.

대학 정원이 20만명이던 1985년 그해에 대입학력고사 응시생은 73만명에 달했다. 누적되는 재수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김영삼 정부는 1995년 학교 부지·건물 등 필수요건만 충족하면 누구나 대학을 세울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개교한 많은 사립대학은 늘어나는 학생들 덕분에 급성장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나라 350여개 대학 가운데 300여개가 사립대학이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이 세계 평균보다 비싼 까닭도 이런 요인이 크다. 우리 국·공립대의 학생 등록금은 사립대의 절반 정도인데, 이는 정부가 그만큼을 보조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을 제외한 대다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은 국·공립 중심 대학 체제를 운용하기에 우리보다 대학 학비가 싼 것이다.

하지만 2001년 69만명 정도였던 대학 입학생은 출생 인구 감소와 비례해 지난해 55만명으로 줄었다. 70만명을 염두에 두고 시설과 인력을 갖춘 많은 대학이 이미 정원(定員)을 못 채우고 있다. 게다가 10여년 전 정치적 구호로 등장한 '반(半)값 등록금'은 최근 들어 일종의 사회규범이 됐다. 그러다 보니 기업으로 치면 도산(倒産)했어야 할 사립대학이 허다하다.

특히 지역의 많은 사립대학은 절벽을 향해 달리는 열차와 같다. 열차를 세우면, 즉 대학을 폐쇄하면 설립자는 빈손으로 떠나야 한다. 이들에게 적정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은 국회에서 10년 넘게 토론만 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학령(學齡) 인구가 한층 빨리 감소해 5년 후면 대학 입학생이 매년 약 30만명 수준으로 급감한다는 사실이다. 이대로라면 많은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한다. 이미 지역에 있는 전문대학들이 크게 어려워졌고 곧이어 수도권 전문대학이, 그리고 지역의 4년제 대학들이 무너질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대학의 자율적 조절 기능에 맡기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지역 대학들은 학생들로 북적대던 과거는 완전히 잊고 생존을 위해 '작고 강한 대학'으로 거듭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정부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지원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역에 1000명이라도 대학생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한 도시의 미래가 달라질 정도로 차이가 크다. 정부 주도 통폐합으로 대학 숫자를 줄이는 것만이 최선이나 능사(能事)가 아닌 것이다.

한 해 약 100만명의 고교 졸업생을 배출하는 일본의 경우 매년 대학 진학자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50여만명이다. 사립대 비중도 마찬가지로 높다. 그런데도 우리의 두 배가 넘는 750여개 대학이 있다. 특히 그중 3분의 1은 재학생 총인원이 1000명도 안 되는 작은 대학들이다.

일본에 많은 소규모 사립대학이 지역에 건재(健在)하는 데는 대학이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해 차별화를 꾀한 게 큰 요인으로 꼽힌다. 여기에다 교직원 인건비의 절반과 운영비 일부를 국가와 지방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경쟁력을 상실하거나 존립 근거가 미약해진 일부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가 구조조정 등 조처를 취해야 한다. 동시에 건실한 강소형(强小型) 사립대학을 지역에 키우려는 노력도 본격화해야 한다.

여기에는 지방정부도 일정한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분명한 것은 지역에 좋은 대학들이 있어야 그 도시도 살고, 국가 전체적으로 선진국의 꿈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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