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데뷔 50년 콘서트 관람기
“저 사실… 50주년이 처음이거든요.” “괜찮았어요? 진짜? 정말?” 12일 저녁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선 가수 조용필은 서릿발 같은 절창을 들려주면서도 노래가 멈추면 관객들과 친구처럼 편안하게 소통했다.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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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히트 원더’란 말이 있다.
하나의 히트 곡만 남기고 잊힌 가수를 가리킨다. 대중음악의 물살은 거세고 비정하다. 재능 있는 가수도 1년을 못 버티고 유행의 급류에 쓸려 망각의 하류를 향하곤 한다.
12일 저녁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가수 조용필(68)의 데뷔 50주년 콘서트 ‘Thanks to You’는 추억의 환기, 기념의 의미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왕’은 새로운 연출과 편곡, 절창에 도전해 끝내 기념 무대 그 이상을 보여줬다.
무대 장치부터 객석을 메운 4만5000명의 좌중을 압도했다. 무대의 뒷면과 측면, 전면에 걸쳐 웅장하게 도열한 11개의 대형 스크린 위로 첫 곡부터 불꽃이 치솟았다. 무빙 스테이지는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이 ‘미지의 세계’ ‘고추잠자리’ ‘단발머리’를 연주하는 동안 멤버 전원을 싣고 경기장의 폭을 가로질러 전진하고 후진했다.
2시간 20분간 30곡이 연주되는 동안 비는 한시도 그치지 않았다. 관객과 공연자 모두에게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비는 때로 공연 분위기를 되레 환상적으로 몰고 가곤 한다. 투명 천막에 둘러싸인 무빙 스테이지는 빗속에서 조명을 받자 강림한 노래의 신을 태운 듯 신기루처럼 빛났다. 비장한 곡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경기장 전체를 휘감은 광폭 레이저는 빗방울과 무지개 현상이 끼어들면서 거대한 전광 나비의 날갯짓으로 화했다.
“저 사실… 50주년이 처음이거든요.” “괜찮았어요? 진짜? 정말?” 12일 저녁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 무대에 선 가수 조용필은 서릿발 같은 절창을 들려주면서도 노래가 멈추면 관객들과 친구처럼 편안하게 소통했다. 조용필 50주년 추진위원회 제공 |
우천 상황에서 조용필의 목 상태는 최선이 아니었다. 최근 후두염 투병까지 한 그였지만 절창에 흠이 가진 않았다. ‘창밖의 여자’는 정면승부였다. 건반 연주와 열창만으로 스타디움을 메웠다. 4만5000명의 관객은 ‘차라리, 차라리 그대의 흰 손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가 마무리될 때까지 쥐죽은 듯 숨죽였다.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했다.
공연 시작부터 ‘여행을 떠나요’ ‘못 찾겠다 꾀꼬리’로 객석 온도를 끓는점 가까이 올려놓은 조용필은 “음악이 좋아 취미로 시작해 평생을 하게 됐다. 여러분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고개를 숙였다. 관객들은 “오빠! 용필 오빠!”로 화답했다.
‘한오백년’과 ‘간양록’이 첫 절정을 이뤘다. 김수철의 ‘팔만대장경’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신시사이저 연주 위로 한없이 느리고 처연한 절창을 풀어낸 이 무대에서 스크린은 푸른 지구와 우주의 이미지를 투사하며 동양적 정서와 철학의 초월성을 은유했다.
중반부의 어쿠스틱 메들리는 ‘그 겨울의 찻집’ ‘허공’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등의 명곡을 새로운 느낌으로 풀어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라틴풍 연주로 재해석됐다.
‘Hello’에서 무빙 스테이지가 스탠드석 바로 앞까지 전진하자 조용필은 객석 쪽으로 내려가 관객 몇 명과 하이파이브도 했다. ‘고추잠자리’는 폭우와 섞여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 공연의 두 번째 하이라이트였다.
공연 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조용필이 “아직도 무대에서 부르면 울컥하게 되는 곡”이라고 했던 ‘슬픈 베아트리체’는 이날 무대에선 무려 8분 34초의 대곡으로 확장돼 본공연의 피날레를 비장하게 장식했다.
공연 서두에 “머리에 힘 좀 줬는데 비가 와서 큰일”이라며 너스레를 떤 조용필은 앙코르에서 ‘바운스’를 부른 뒤 스스로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아이처럼 웃어 보였다. 그 순간, 반세기 전 청년 가수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 오뚝 선 그의 뒤편으로 마치 한국 현대사의 격류가 보이는 듯했다. 그것은 노래들을 휩쓸고 가지 못했다.
조용필의 50주년 순회 콘서트는 19일 대구, 다음 달 광주, 경기 의정부로 이어진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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