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석 교수, 비보 풍수 집대성 ‘사람의 지리-우리 풍수…’ 책 펴내
최원석 교수가 지난해 여름 경남 산청군 신등면 모례마을을 답사하다가 마을 돌탑 앞에 섰다. 소나무숲 속에 조성된 이 돌탑은 금줄이 둘러쳐 있어 신성시됐음을 알 수 있다. 최원석 교수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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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깊은 전통 마을이 곧 명당입니다.”
최원석 경상대 기금교수(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전문위원·55)가 자신의 풍수 연구를 집대성한 ‘사람의 지리―우리 풍수의 인문학’(한길사·사진)을 최근 냈다. 그에게 “전원주택을 지으려는 이들을 위한 명당의 조건이 있다면 알려 달라”고 묻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전화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깊은 산 속 외딴 곳에 명당이 있는 게 아니다”라며 “수백 년 지속된 전통 마을은 그 지역에서 사람이 살기에 최적의 입지라는 것이 풍수적으로 검증됐고, 주민들과 교류도 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고 설명했다.
이 책은 경상대에서 명산문화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는 그가 자신의 ‘비보(裨補)’ 풍수 연구를 집대성한 것이다. 비보 풍수는 지형이나 산세가 풍수적으로 부족하면 이를 보완하는 법이다. 과거 “재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는다”며 마을에 조성한 비보 숲이 그 예다. 그런 숲은 북서계절풍을 막고 여름에는 휴양림 역할을 하는 한편 토양의 유실을 막는다.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에서 풍수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비보 풍수는 한국 풍수의 특징이자 정체성”이라고 강조했다.
책에 따르면 전통 시대 백성들에게 ‘삶터’는 산과 물이 적당히 둘러 감고 양지바르면 됐다. 마을 동구에 빈 구석이 있으면 산에서 나무를 옮겨다 심어가며 살 만한 터전으로 가꿨다. 최 교수는 마을 고유의 풍수 설화, 오래 가꿔온 풍수 경관이 한국 풍수를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풍수는 환경을 관리하고 토지 이용을 지속가능하게 만든 경험적, 전통적 지식 체계입니다. 동아시아에서 사람이 자연과 상보(相補)하기 위해 쭉 이어져 내려온 것이지요. 요즘 용어로 번역하면 환경 인문학입니다.”
그러나 풍수라고 하면 미신이라는 통념이 여전히 많다. 최 교수는 “풍수사들마저도 좋은 터에 묘를 써서 후손이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발복(發福·운이 틔어 복이 닥침)을 위한 풍수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책은 시대별 풍수문화사, 한국을 대표하는 풍수사상가, 최근의 풍수 연구 흐름을 소개한다. 풍수는 8세기 중국에서 전해진 뒤 고려 시대 불교와 결합해 고유의 특색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조선시대 들어 백성의 삶에 녹아들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처럼 풍수가 오랜 기간 폭넓은 계층에 영향을 준 곳은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이 유일하다. 원조인 중국도 시대에 따라 부침이 있었고, 일본에서는 영향이 덜했으며, 류큐국(오키나와)은 주로 지배층에서만 활용했다. 최 교수는 “풍수는 한국인의 전근대 공간 인식의 질서를 만드는 원형적, 무의식적 체계”라며 “한국에서는 ‘풍수 문명’이라 할 만한 위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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