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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내가 만난 名문장]빛보다 더 빛나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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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건축가에게 빛은 순식간에 조율되지 않은 강렬한 땡볕이 되어 딱딱한 표면 위로 쏟아질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숭고를 위한 최고의 수단은 바로 그림자다. 이러한 까닭에 크기와 무게 다음으로 건축의 힘은 그림자의 양에 의존한다고 할 수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건물 가운데 웅장한 크기의 격렬하고 깊이 있는 그림자가 그 표면과 어우러지지 않은 것은 없다고 믿는다.”
―존 러스킨, ‘건축의 일곱 등불’ 중에서
동아일보

김승한 사진작가


건축물은 늘 마주치며 그 안에서 생활하기에 익숙함을 넘어 어떤 때는 특별한 인식의 단계에서 벗어날 때도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건축물에는 문화의 변화가 빠르게 감지되며 반영된다. 종교적 바람이 반영되거나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기도 한다. 건축 디자인은 문화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잣대다.

인간이 쌓아 올린 건축물은 지극히 인위적이지만 빠뜨릴 수 없는 자연적 요소도 있다. 바로 빛으로 인한 그림자다. 건축물이 위치한 장소와 시간에 따라 그림자는 건축물의 디자인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림자로 인해 때에 따라 예상치 못한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존 러스킨은 이러한 그림자의 역할에 주목했다. 건축가가 그림자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구조적 아름다움에만 몰입되지 않기를 바랐다.

거의 10년 넘게 건축 구조물을 촬영하는 내게 그림자는 이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건축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변화무쌍한 그림자는 정적인 건축물에서 매우 드라마틱한 장면을 선사한다. 뻔했던 대상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의 양으로 고정관념을 깨뜨릴 때 비로소 셔터를 누른다. 마치 갈등과 비애라는 인생의 그림자를 겪어 온 사람이 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상할 수 없는 경험이 인생의 진한 그림자를 드리울 때 우리는 이를 헤쳐 나가면서 비로소 삶의 이정표를 세워 나간다. 빛보다 그림자가 더욱 빛나 보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김승한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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