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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말귀 어두운 AI가전 젠더혁신으로 귀 틔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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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준영 기자] ["연령대 맞는 음성인식 기기 개발"…과학기술연구 젠더혁신 반영 위해 법·제도 필요]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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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동이 불편한 김독거씨(70)는 최근 집안에 설치된 음성인식 AI(인공지능)로 가전제품, 조명, 난방 등을 모두 제어할 수 있다고 광고한 새 아파트에 입주했다. 하지만 김씨는 “예전에 살던 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스마트홈 시스템이 김씨의 음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탓에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음성인식기술에서의 젠더혁신’이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낸 이지연 중원대학교 생체의공학과 교수. 그에 따르면 지금의 AI 음성인식 기술은 일반인들의 자연스러운 발성에 의한 음성을 음운 단위로 분해해 주파수로 인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김독거씨는 노화로 인해 성대 기능이 약화했고 낮은 폐압으로 음성 강도도 약한 상태다. 말을 할 때 호흡이 가빠 말의 속도가 느린 데다 쉰 목소리에 기식성 소리(바람이 새는 듯한 소리)도 난다. 전형적인 ‘노인음성’의 특징이다. 김씨 집의 스마트홈 시스템은 이런 노인 음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지원되지 않는 경우다.

이지연 교수는 “AI스피커의 음성인식 성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어린이·청소년·성인·노인음성 DB(데이터베이스)를 따로 구축해 각 연령대에 맞는 음성인식 기기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삶의 질 향상을 우선한 4차 산업혁명 핵심기술 개발로 ‘젠더혁신’이 함께 주목받는다. 젠더혁신은 과학기술 분야 R&D(연구·개발) 전과정에서 성별·세대별 특성에 기초한 연구를 하자는 운동으로 국내에서 본격화한 것은 2016년부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여성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젠더혁신연구센터가 그간 해당 연구를 지원, 그 첫번째 연구성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남윤자 의복인간공학연구실 소장(서울대 의류학과 교수)은 외골격 착용 로봇, 의료·재활용 웨어러블(착용형) 로봇 개발 등에 연령별 젠더 특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남 소장은 “실질적으로 로봇을 필요로 하는 층은 걷기 힘든 50대 후반 장년세대인데 현재 연구는 20~30대 비교적 바른 자세의 남성을 표준으로 삼아 이뤄진다”고 지적했다.

남 소장이 연령·성별에 따른 체형 차이를 분석한 결과 정면에서 바라볼 때 좌우 비대칭 경향은 남성 고령자보다 여성 고령자에게 크게 나타났다. 또 고령 여성의 약 31%는 측면에서 볼 때 휜 체형(9.52%), 젖힌 체형(5.95%), 숙인 체형(15.97%) 등으로 자세가 변형됐다. 자세와 무게중심이 변화했다는 것은 직립 및 보행을 위해 활성화한 근육의 종류와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 소장은 “보행 보조기구, 웨어러블 소프트 로봇 개발 시 남녀 노인 특성에 따른 체형 및 근육기능 분석자료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남 소장은 ‘여성용 방호복’ 디자인 연구과제를 받아 진행한다. 남 소장에 따르면 조류인플루엔자 등 감염병 처리현장에서 장시간 일하는 구급대원들이 입는 방호복은 남녀 구분이 없다. 이 때문에 대부분 여성대원은 남성대원들이 입기엔 치수가 작은 방호복을 착용한다. 긴 소매와 바지 기장은 접어 청테이프로 감아 고정하는데 대충 입는 경우가 많아 오염균에 노출될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6년부터 척추동물과 인간에 대한 모든 R&D 과제신청서에 성을 생물학적 변수로 보고 연구설계부터 연구방법론에 성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할 것을 의무적으로 요구한다. 유럽연합(EU)도 연구혁신 프로그램 ‘호라이즌(HORIZON) 2020’에 이같은 내용을 반영토록 한 뒤 젠더혁신 관련 지원과제 비율이 36.2%로 상승했다. 캐나다는 연구지원비의 30%를 젠더혁신 연구에 우선 배정한다.

박영일 이화여자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는 “현장에선 법·제도 미비를 이유로 젠더혁신 도입을 주저하는 것이 현실”이라며 “젠더혁신을 과학기술기본법과 연구윤리 등에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류준영 기자 j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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