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 책 펴낸 조정래 작가
논술문 주고받으며 생각 나눠 타인 가치관 이해하는 데 도움
신문 사설 활용, 최고의 논술교육
2017년이 막 시작될 무렵 고등학교 2학년 진학을 앞둔 손자가 불쑥 말을 꺼냈다. 난데없는 얘기에 할아버지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이내 뜻을 알아차렸다. 글을 주고받자는 말이었다. 물론 평범한 글은 아니었다. 한 주제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 논술문을 주고받자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논술 대화는 일 년간 계속되며 할아버지와 손자의 생각을 잇는 다리가 됐다. 손자가 먼저 논술문을 써보내면, 할아버지는 이를 교정하고 같은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은 글을 적어 보냈다. 최근 '할아버지와 손자의 대화'란 책을 펴낸 조정래(75) 작가와 손자 조재면(용인한국외국어대부설고 3)군의 이야기다.
손자 조재면(사진 오른쪽)군과 일 년간 논술로 대화한 조정래 작가는 “글을 주고받은 게 서로 생각과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됐다”고 말했다. /이신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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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사설은 최고의 글쓰기 교재
두 사람의 논술 대화는 사실 조 작가의 선물에서 비롯됐다. 재면군이 논술 쓰기를 제안하기 일 년 전 조 작가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손자에게 책 한 권을 건넸다. 손자를 생각하며 일 년 동안 매일 정성스럽게 신문 사설을 오려 스크랩한 것이었다. 그는 손자에게 사고력을 길러주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가르치는 데 이보다 좋은 교재가 없다고 생각했다. 조 작가는 "사설을 반복해서 읽다 보면 논술이라는 개념이 자연스럽게 잡히고, 논술 쓰기도 어렵지 않은 일이 될 것이라 여겼다"고 밝혔다. "사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이 책 읽기와 글쓰기예요. 이것이 여전히 '주입식 암기 교육'을 하는 우리나라에서 아이들에게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줄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보거든요. 20명의 사람이 있으면 20가지의 생각이 있어야 하는데, 주입식 교육은 이런 다양한 생각을 막아버립니다. '창의 교육'이 이뤄질 수가 없죠. 내 손자만큼은 그렇게 키우지 말자는 생각에서 일찍부터 가정에서 독서를 강조했어요. 재면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읽은 책만 해도 1500권이 넘을 정도죠. 사설 스크랩북을 선물한 것도 이 같은 생각에서였어요."
조 작가가 건넨 사설 스크랩북은 재면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재면군은 "사설을 읽으면서 같은 사건이나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느꼈다"고 했다. 일 년간 스크랩북을 곱씹어 읽은 재면군은 사설처럼 자신의 주장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 만약 자신이 논술을 쓴다면 작가인 할아버지가 가장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함께 논술 쓰기를 해보자고 제안하기란 쉽지 않았다. 재면군은 "최고의 작가에게 제 글을 보내는 것이 몹시 부담스러웠다"며 "솔직히 '글을 다 뜯어고쳐서 돌려보내시면 어쩌나' 걱정했다"고 털어놨다.
첫 글의 주제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었다. 수많은 자료를 찾아 읽으면서 개요를 짜고 글을 쓰고 퇴고하기까지 한 달 넘게 걸렸다. 그렇게 탄생한 재면군의 첫 글은 조 작가를 놀라게 했다. 조 작가는 "사실 글을 받기 전에는 '다 뜯어고쳐 줘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기승전결을 제대로 갖춘 글인 데다 논리 전개에 무리가 없어 생각보다 고칠 부분이 많지 않더라"고 했다.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손자의 생각이 예상 외로 깊다는 점에 놀랐어요. 재면이뿐 아니라 요즘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도 알게 됐죠. 글을 주고받은 게 서로 생각이나 가치관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됐습니다."
◇논술 쓰기, 타인의 생각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
논술 쓰기를 처음 시작할 땐 조 작가가 일방적으로 손자인 재면군을 가르치게 될 것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둘 모두에게 공부의 기회가 됐다. 조 작가는 "200자 원고지 25장에 달하는 재면이의 첫 글을 받고 몹시 당황했다"며 "그것보다 짧지 않으면서 재면이의 예상을 뛰어넘어 새롭다고 느껴질 만한 글을 써야 한다는 부담마저 느꼈다"고 말했다. 재면군이 꼬박 한 달을 들여 쓴 만큼 조 작가도 글쓰기에 공을 들였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다룬 두 번째 글을 쓸 때는 관련 서적을 4권이나 읽었을 정도다. "가장 어려웠던 건 세 번째 주제인 '게임 셧다운제'였어요. 평생 휴대전화도 써본 적 없는 제가 게임 셧다운제에 대해 뭘 알겠어요. 용어조차 처음 들었죠. 주위 사람을 총동원해 자료를 모아서 철저하게 공부한 다음에야 글을 썼습니다. 제게도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재면군 역시 논술 쓰기를 계속하면서 몰라보게 성장했다. '양성평등'과 '비만'을 다룬 마지막 글 두 개는 200자 원고지 50장에 달했다. 재면군은 "할아버지께서 고치거나 지적한 점을 되새기면서 쓰다 보니 점차 실력이 늘었다"며 "마지막에 늘 제 예상을 뒤집는 방식으로 마무리되는 할아버지의 글도 제게는 좋은 교재가 됐다"고 말했다. 일 년간 지속한 논술 대화가 효과를 톡톡히 발휘한 셈이다. 조 작가는 "사설 읽기나 논술 쓰기는 모든 가정에서 시도해봄 직한 공부"라며 "다만 이는 논리적인 글의 전개 방식을 익히고 한 가지 주제(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이해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함께하는 어른이나 부모가 아이 생각을 무시하고 자기 의견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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