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현 등 피해자 특정 어려워
지난 1월 국내 ‘미투’ 운동이 촉발된지 100일이 지났지만 영화감독 김기덕, 배우 조재현, 음악인 남궁연 등 일부 유명인들의 미투 의혹에 대한 폭로만 나왔을 뿐 경찰 수사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관련기사 9면
9일 경찰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미투 운동과 관련해 총 70명에 대해 성폭력 의혹을 살펴보고 있다. 이 가운데 21명에 대해선 정식 수사를, 15명에 대해선 내사를 진행 중인데 유명인은 각각 10명, 7명이 포함돼 있다. 나머지 34명에 대해선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다.
성추행 의혹이 잇따른 남궁연이나 복수의 여배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김기덕의 경우 피해자들이 진술을 꺼려해 여전히 내사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일부 피해자들은 남궁연을 상대로 고소하겠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사건이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인 2013년 이전에 발생한 탓에 고소기간을 이미 넘긴 것으로 나타났다.
김기덕과 마찬가지로 여배우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는 조재현의 경우 피해자들이 특정되지 않아 내사 이전 단계인 사실관계 확인 단계에서 거의 진척이 없는 상태다.성폭력 의혹이 불거지면 경찰은 우선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피해자를 특정한 뒤, 피해자와 접촉해 피해 진술을 확보하는 ‘내사’ 단계를 거친다. 이후 가해자에 대한 혐의가 포착되면 ‘정식 수사’로 전환한다. 남궁연이나 김기덕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은 특정됐지만 이들이 보복이나 2차 피해를 우려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폭력 수사에 있어서 피해자들의 직접 진술이 관건이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각 정부 부처에서 성폭력 신고센터를 운영하면서 상담과 신고를 도와주고 있지만 피해자들의 자발적인 제보가 없으면 수사가 쉽지 않다”며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자발적으로 신고하고 직접 진술할 때까지 기다려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투 운동 이후 다수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졌지만 현재까지 성추행 및 성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넘겨진 가해자들은 17명에 불과하다. 이 또한 피해자들이 보복이나 2차 피해를 우려해 피해사실 진술을 꺼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피해자들의 용기로 법적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된 이들도 있다. 연극연출가 이윤택, 경남 김해 극단 번작이의 조증윤 전 대표, 만민중앙성결교회의 이재록 목사 등이 대표적이다.
공개적인 미투 폭로에도 불구하고 부실한 수사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국내 미투 운동의 방아쇠를 당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이 대표적이다. 안 전 국장은 지난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서 검사의 폭로로 검찰 성추행 진상조사단이 꾸려진 지 82일만이다. 성추행 의혹은 서 검사가 고소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소시효가 만료돼 기소대상에서 제외됐다. 일각에선 검찰이 안 전 국장에 대해 늑장 수사를 한 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했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현정 기자/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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