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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0 (목)

이란 팔레비왕조 마지막 왕자 "테헤란 미라는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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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이란 팔레비 왕조를 창건한 레자 샤[AP=연합뉴스자료사진]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 이슬람혁명(1979년) 직전까지 존속한 팔레비왕조의 마지막 왕자 레자 팔레비가 22일 테헤란 외곽에서 발굴된 미라가 자신의 할아버지인 레자 샤 팔레비(1944년 사망)라고 주장했다.

레자 팔레비는 25일 자신의 트위터에 게시한 팔레비 왕실 명의의 문서에서 "관련 정보를 취합해 검증한 결과 그 미라가 할아버지, 레자 샤의 시신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이란 정권은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의료, 과학 전문가가 이를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 시신임이 확인되면 우리 가족과 이란 국민의 뜻을 존중해 이란 땅에 격에 맞는 방식으로 다시 안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미라는 테헤란 남부의 샤흐레-레이 지역의 공사현장에서 발견됐다.

이 시신이 발견된 공사현장이 다름 아닌 레자 샤를 추모하려고 지어진 영묘(1979년 파괴)가 있던 터라는 점에서 이 미라의 주인이 팔레비왕조를 창건한 레자 샤 팔레비라는 추측이 나왔다.

레쟈 샤는 팔레비왕조의 첫 왕으로 즉위해 이란의 근대화를 추진한 인물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에 가담하면서 영국, 소련 등의 압박을 받았고 결국 1941년 이들이 이란을 침공하면서 아들 모하마드 레쟈 샤에게 양위하고 반강제로 물러났다.

영국은 폐위된 그를 모리셔스,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옮기며 망명하도록 했다. 그는 망명지였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1944년 만성 심장질환으로 사망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그의 시신의 행방은 미스터리에 빠졌다.

처음엔 이집트 카이로의 알리파이 모스크에 안장됐다가 1950년 유해가 이란으로 되돌아 왔고, 테헤란 남부의 레자 샤 영묘에 안치됐다. 미라가 발굴된 곳이 이 영묘가 있던 자리다.

이후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팔레비 왕정이 전복되자 다시 카이로로 옮겨졌다고 알려졌으나 이 영묘에 그대로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레자 팔레비도 트위터에 올린 문서에 "할아버지는 샤흐레 레이의 영묘에 묻힌 뒤 이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팔레비 왕정에 적대적이던 혁명 시위대는 이 영묘를 급습해 그의 시신을 찾으려 했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이 영묘는 1980년 혁명수비대의 결정으로 파괴됐다.

팔레비 왕가는 혁명이 최고조에 이른 1979년 1월 이집트로 피신한 뒤 영국, 미국 등을 전전했다.

레자 팔레비의 아버지 모하마드 레자 샤는 1980년 이집트에서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남동생 알리레자는 2011년 미국에서 우울증을 앓다가 총으로 자살했고, 여동생 레일라도 2001년 런던의 한 호텔에서 약물 과다복용으로 숨졌다.

레자 팔레비와 어머니 파라 왕비와 함께 미국에 거주하면서 이란 정부를 비판하고 왕조 복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팔레비 왕조의 마지막 왕자 레자 팔레비[트위터]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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