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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남북회담 D-2 문 대통령 ‘판문점 연락사무소’ 제안 구상,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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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북 당국 간 협의 상설화 창구

판문점 연락소·남북공동위 통해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동력’ 마련

사문화된 남북기본합의서 되살려

평화공존·공동번영 디딤돌 놓기



한겨레

그래픽_정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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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은 지금은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북-미 정상회담과 무관하게 남북이 따로 진도를 낼 수도 없고, 국제 제재를 넘어서서 합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적어도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동력은 마련되어야 되겠다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언론사 사장단 초청 청와대 오찬 때 한 발언이다. 4·27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언론의 과도한 기대를 눅이려는 의례적 발언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아니다. 이 발언에는 청와대가 꼽은 이번 정상회담의 ‘3대 의제’(한반도 비핵화, 항구적 평화 정착, 남북관계 획기적 개선) 가운데 ‘남북관계 획기적 개선’과 관련한 문 대통령의 깊은 속내와 전략이 오롯이 담겨 있다. 핵심은 “적어도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동력은 마련되어야 되겠다”는 문구다.

문 대통령의 이런 판단은 1차적으론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따른 유엔 등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로 이번 정상회담에서 1·2차 정상회담 때와 달리 대규모 경제협력 프로젝트의 합의를 도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게 경협의 포기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남북·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에 가닥이 잡히면 합의 이행 과정에서 제재가 완화될 것이고, 그러면 추가 남북정상회담에서 경협을 주의제로 논의할 기회가 열린다”는 정세 인식에 공감한다. “경협은 이번 회담의 주의제가 아니다”라는 임종석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의 거듭된 확언은 이런 인식을 배경으로 한다.

다만 문 대통령의 시선이 ‘제재’라는 현실적 제약에만 갇혀 있지는 않다. ‘판문점 연락사무소’ 개설과 ‘분야별 남북 공동위’ 구성·운영 제안 방침은, “궁극의 목적은 남북의 공동번영”이라는 문 대통령의 확언처럼, 남과 북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향한 오랜 꿈을 현실화시키려는 디딤돌 놓기 작업의 하나다. 무엇보다 이런 접근법은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복원·현실화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1992년 남북고위급회담의 결과를 담은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1·2차 남북정상회담을 포함해 역대 남북 당국 간 합의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남북 평화공존의 대장전’으로 불리지만, 합의 이행에 실패해 ‘죽은 문서’로 간주돼 왔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는 옛말처럼, ‘대북 제재’의 굴레를 피할 수 없다면, 이참에 새로운 협력사업 합의에 헛힘을 쓰기보다 남북기본합의서체제의 복원·현실화를 통해 남북관계의 기반을 다질 대화의 정례화·상시화·상설화에 진전을 이루자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강조한 “계속 대화할 수 있는 동력 마련”의 알짬이 이것이다.

다만 남북기본합의서는 북쪽엔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북쪽은 지금껏 남북의 주요 합의로 7·4 공동성명, 6·15 공동선언, 10·4 정상선언을 강조하면서도 남북기본합의서는 거론을 피해왔다. 1990년대 초반 옛 소련 등 실존사회주의 국가의 잇단 체제전환 때 흡수통일을 피하려 체제 방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한 합의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애초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가 제안한 서울-평양 상주 연락대표부 설치 방안이 ‘판문점 연락사무소’ 설치로 축소 합의되고도 그나마도 직통전화 운용 수준으로 기능이 격하된 것이나, 남북 당국 간 상설 회의체인 정치·군사·경제 등 각 분야 공동위원회가 몇차례 회의 뒤 중단된 것은 북쪽의 소극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회담 상대역인 김정은 위원장은 입만 열면 ‘조국통일’을 외쳐온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남북관계를 ‘두 주권국가의 정상적 관계’로 재정립하고 싶어한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 판단이다. 더구나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대리해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호흡을 맞춰 남북·북미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핵심적 구실을 하는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1990년대 남북고위급회담 북쪽 대표단의 일원이었다. 김영철 부장은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직후 “이 합의문서는 당신들의 것이지 우리 것이 아니다”라고 불평을 늘어놨다지만, 지금은 사반세기가 지난데다 무엇보다 최고지도자의 인식이 달라졌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24일 “이번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연락사무소 설치에 합의한다면, 1·2차 정상회담의 그 어떤 합의 내용에도 꿀리지 않을 역사적 성과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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