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에서의 확성기 방송은 북한이 먼저 시작했다. 북이 1962년, 남이 1963년이다. 이때만 해도 북한 경제 형편이 우리보다 낫다고 할 때였다. '사회주의 낙원으로 오라'는 북 선전은 꽤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돈도 주고 대학도 공짜'라는 북 방송에 철조망을 넘는 남한 병사가 나왔다. 북한군 출신 탈북자는 "1970년대 중반까지 탈북(脫北)보다 탈남(脫南) 병사가 더 많았던 걸로 안다"고 했다. 북은 체제 경쟁에서 완패한 1990년대 후반부터 '확성기를 끄자'고 요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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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확성기 방송을 들었던 탈북자들은 "남한 일기예보가 제일 신기했다"고 입을 모은다. '빨래 걷으라'는 방송이 나오고 얼마 안 있으면 정말 비가 내리는 걸 보고 확성기 방송을 믿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전방 북한군이 가장 놀라는 뉴스는 김씨 일가 관련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정말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했던 사실에 귀를 세우게 된다. 북한군은 김정은 폭정(暴政)과 은밀한 가족 관계, 인권 탄압 등을 확성기 덕분에 깨달았다. 북은 외부 정보에 노출되면 버틸 수 없는 가짜 체제, 연극 체제다. 김정은은 미국 폭격기보다 확성기 진실이 더 무서울 수 있다.
▶국방부가 23일 휴전선 일대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북한 4차 핵실험에 대응해 방송을 재개한 지 2년 3개월 만이다. 북이 21일 핵·ICBM 실험 중지와 핵실험장 폐쇄를 발표한 데 화답하는 모양새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남북 정상회담도 고려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남북, 미·북 정상회담에서 핵 폐기 시한을 1~2년 내로 못 박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면 확성기 중단이 아니라 더 큰 선물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김정은 의도가 오리무중이다. 예전처럼 또 '말장난'이나 반복하면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북 확성기를 북한 주민들까지 들을 수 있게 더 크게 틀어야 한다.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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