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요구해 한몫 챙기려는 엘리엇
엘리엇이 현대차그룹을 겨냥해 처음 활시위를 당긴 건 이달 초다. 지난달 말 현대차그룹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한다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다. 순환출자는 A계열사가 B사 주식을, B사가 C사 주식을 갖고 있는데, C사가 A사 주식을 소유한 지배구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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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발표 후 일주일 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식 10억달러(약 1조700억원) 보유 사실을 공개하며 배당 확대 등의 주주 친화 정책 확대를 요구했다. 겉으로는 지배구조 개편 계획에 대해 "환영한다"고 평가하는 등 분위기는 우호적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과 엘리엇 측은 이후 지배구조 개편에 대한 이견을 조율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 23일 엘리엇이 인터넷에 공개 제안서를 올리며 기습 공격에 나섰다. 이번에는 기존 개편안의 골격을 뒤흔드는 내용이 포함돼 현대차그룹과 시장을 당혹하게 했다.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에 현대차·현대모비스 합병을 통한 지주사 전환,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4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그중 핵심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이다. 합병 후 법인을 다시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지주사가 사업회사 지분을 공개 매수한 뒤, 기아차와 지주사 및 사업회사 간의 지분관계를 해소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현대캐피탈·현대카드 등 금융회사를 가진 현대차그룹이 지주사로 전환하는 것은 '산업자본인 지주회사는 금융회사 주식을 소유할 수 없다'는 현행 공정거래법을 감안할 때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 밖의 제안도 현대차가 단번에 수용하기는 어려운 요구들이다.
세종대 경영학과 김대종 교수는 "현대차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 조건을 내걸고, 한몫 챙겨보려는 헤지펀드 특유의 협상 전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주총까지 여론전 나설 듯
3년 전 삼성물산 사태 때와 달리 비교적 온순해 보였던 엘리엇이 발톱을 드러내게 된 이유를 현대차와의 협상이 원만하지 않았던 것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지금은 엘리엇이 모든 현대차그룹 주주들을 대상으로 '누구 말이 맞는지 한번 들어보라'며 도발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주주 친화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주가(株價) 띄우기'에 나섰으나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한 것도 엘리엇이 2차 포문(砲門)을 연 이유 중 하나라는 의견도 있다.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기아차·모비스 주가는 23일 기준으로 엘리엇의 1차 공개일(4월 4일) 전날에 비해 떨어지거나 소폭 오르는 데 그쳤다. 현대차가 4.9% 상승했고, 모비스와 기아차는 각각 4.7%, 1.3% 하락했다. 유진투자증권 이재일 연구원은 "지주사로 전환하면 지배구조가 이중 삼중으로 돼 있는 것보다 배당을 받아가기에는 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엘리엇이 다음 달 29일 열리는 현대모비스 임시주총까지 계속해서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합병에 반대 의견을 내며 세를 규합할 것으로 예상한다. 대대적인 여론전에 나설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49.3%나 되는 현대모비스의 분할·합병 추진에 현대차그룹이 큰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투자 송선재 연구원은 "엘리엇은 여론전으로 우호 지분을 최대한 늘리려 할 것"이라며 "현대모비스 주주들이 기존 안에 대해 불리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집중 공략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예컨대 현대모비스의 알짜배기 사업 부문(모듈 및 AS사업부)을 현대글로비스에 주면 현대모비스의 수익구조가 악화될 게 뻔한데, 그 대가로 현대모비스 1주당 현대글로비스 주식 0.6주를 받는 것은 부당한 합병 비율이라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이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을 달래기 위해 배당 확대 등 양보안을 내놓으면 엘리엇으로서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셈이 된다.
김지섭 기자(oasis@chosun.com);정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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