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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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
“형은 지금까지 많이 가지고 놀았으니까 이제 너 가져.” 동생에게 자기 장난감을 기꺼이 양보하는 아이. “너 먼저 먹어. 나는 조금 있다 먹어도 돼.” 친구에게 선뜻 간식 순서를 양보하는 아이. 지켜보는 부모를 미소 짓게 하는 훈훈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스스로 양보하는 아이를 보기가 쉽지 않다. 아이들은 대부분 혼이 날까 봐 혹은 강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양보를 한다.
아이들은 왜 양보하는 것을 싫어할까? 손해 보는 것, 억울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들의 첫 양보는, 자기보다 힘이 센 사람이 “네가 양보해”라고 강요하면서 시작된다. 양보가 뭔지도 모르는데, 자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니 첫 경험부터 뭔가 뺏긴 것 같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양보는 너무 일찍 가르쳐서는 안 된다. 아무리 인간이 꼭 배워야 하는 도덕적 가치라도 발달단계를 고려하지 않고 너무 일찍 가르치면 그것은 일종의 억압일 수 있다.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최소 만 7세는 넘어야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생긴다.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 ‘양보’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보는 초등학생이 되고 나서 가르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초등학생이라도 형제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개념은 알지만, 형제 관계에서는 양보를 강요당하면 쉽게 억울함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양보는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아이에게 우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이렇게 결정하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크고, 저렇게 결정하면 저렇게 풀려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해준 뒤, 어떻게 하는 것이 너에게 가장 도움이 될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더 도움이 될 것’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동생이 달라고 떼를 부린다. 부모가 큰아이에게 동생에게 절반을 주라고 하면서 “지금 주면 이따가 저녁때 아빠가 데리고 나가서 다른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줄게”라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반을 주는 것이 나에게 더 도움이 되는 것이다. 양보를 가르칠 때는 이렇게 몇 가지 생각의 단계를 거치도록 도와준다. 그래서 아이가 지금 당장은 손해인 것 같지만, 결국은 그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양보를 해 놓고도 억울하고 손해 봤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약 그래도 아이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선택을 하면 어떻게 할까?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 “저는 그래도 안 주고 싶어요”라고 하면 “그래, 네 생각대로 하렴”이라고 하고 이후 결과를 경험해 보게 하는 것도 괜찮다. 아이가 죽어도 양보하는 것이 싫다고 하면, 설득을 하거나 혼을 내서 결국은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조금 욕을 먹더라도 진짜 하기 싫은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아이가 천천히 경험해 가면서 깨칠 수 있도록 유연하게 가르쳐야 한다.
종종 우리 아이는 무조건 양보만 한다고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다. 이런 아이들은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칭찬 때문이다. 칭찬을 받고 싶어서 무조건 하는 것이다. 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의 판단과 평가가 중요한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기가 약한 것이다. 분위기상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다. 양보로 포장된 기 약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억울함이 조금씩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부모들은, 교사들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양보를 무척이나 가르치고 싶어 한다. 양보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너무나 보고 싶어 한다. 그런 본인들은 ‘양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상황에서 쉽게 ‘양보’가 되는가? 정작 본인들은 양보를 ‘손해’라고 여기면서 아이들에게만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는 양보를 하라고 하고, 어떤 상황에서는 양보하면 ‘바보’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가려면 양보는 꼭 필요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르게 선한 존재라 양보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안전한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만약 양보가 없다면 서로 죽고 죽이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파멸이고 파국이다. 양보는 인간의 삶에 결국 도움이 되고, 서로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좀 더 나은 방법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이다. 양보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여주지 않으면서, 말로만 양보하라고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이들은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을 더 빨리 익힌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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