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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흉기-CCTV-자백 없는 ‘3無 살인’… 檢은 사형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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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그후]윤송이 사장 부친 살해사건 재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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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발생한 경기 양평군 전원주택 살인사건에는 세 가지가 없다. 범행에 쓰인 흉기, 범행 현장이 찍힌 폐쇄회로(CC)TV 그리고 용의자 자백이다. 살인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인 ‘스모킹 건’이 없는 것이다. 피해자는 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43)의 아버지, 김택진 대표(51)의 장인이다. 피의자는 서울 강남 일대에서 부동산중개업자로 일했던 허모 씨(42). 그는 지난해 11월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뒤 열린 재판 내내 당당한 모습이었다.

24일 오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법 310호 법정. 1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피고인석의 허 씨는 자신을 바라보는 유족을 똑바로 쳐다봤다. 재판 도중 피식거리며 웃기도 했다. 메모가 빼곡히 적힌 A4 용지 크기의 초록색 노트를 수시로 들춰 봤다. 신문 도중 그는 재판장을 향해 소리치듯 말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하루속히 진범을 잡아주십시오.” 방청석에선 “미친놈”이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 “자백했다”는 형사 증언에 ‘피식’ 웃어

이날 윤 사장 부부가 방청석에 나타났다. 두 사람의 표정은 재판 내내 굳어 있었다. 시선은 줄곧 연두색 수의를 입은 허 씨를 향했다.

사건은 지난해 10월 25일 양평군 서종면의 한 전원주택 마을에서 일어났다. 윤 사장의 아버지 윤모 씨(당시 68세)는 색소폰 동호회에 갔다가 막걸리 두 통을 사 들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마을 입구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윤 씨는 다음 날 오전 자택 주차장 옆 수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목과 손 등 여러 곳이 흉기에 찔렸다. 윤 씨의 벤츠 차량은 자택에서 5km 떨어진 공터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 다음 날 전북 임실군에서 도주하던 허 씨를 체포했다. 사건 당일 CCTV에 윤 씨의 차량이 움직이는 모습이 찍혔는데 운전자가 허 씨였다. 다행히 CCTV에 허 씨 소유의 차량 번호도 찍혀 있었다.

허 씨는 검거된 직후 첫 조사에서 범행을 시인했다. 하지만 2차 조사부터 말을 바꿨다. “고급 전원주택을 보러 나갔다가 벤츠를 보고 훔쳤을 뿐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아예 묵비권을 행사했다. 이날 수사를 맡았던 형사가 법정에 나와 허 씨의 자백을 증언했다. 하지만 허 씨는 피식 웃었다. 지난달 열린 재판에서도 또 다른 형사는 “(허 씨의 태도가) 너무 상반돼 당황스럽다. 처음에는 ‘악마가 들어와서 그런 짓을 했다. 내가 죽어야 한다’고 말하더니…”라고 말하며 당혹스러워했다.

허 씨는 “경찰이 나를 살인자 취급해서 자포자기 심정으로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검사가 “6000만 원의 빚 독촉을 받자 강도 살인을 하게 된 것”이라고 몰아세우면 허 씨는 “그 정도로 곤궁하지 않았다”고 받아쳤다.

○ ‘3無’ 살인사건

“이 잡듯이 뒤졌는데 안 나왔어요. 마을 주변에 연못이 천지고 앞은 북한강인데 던져버린 것 같습니다.”

수사팀 형사는 범행에 쓰인 흉기를 찾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찰은 양수리 인근 횟집과 허 씨의 집을 뒤졌지만 허사였다. 검찰은 대신 허 씨의 옷에 윤 씨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에 허 씨는 “윤 씨 차량에 묻어 있던 윤 씨의 피가 옷에 묻었을 뿐”이라고 잡아뗐다.

범행 현장이 한적한 전원주택 단지라는 것도 허 씨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살인 목격자는 물론 사건 당일 허 씨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주변에 CCTV도 없었다. 윤 씨 자택 주차장을 비추는 CCTV는 사건 6개월 전부터 꺼져 있었다. 유일한 단서는 마을 입구에서 윤 씨 집 쪽을 비추는 CCTV에 찍힌 허 씨의 모습이다. 그는 범행 추정 시각 이후 1시간 동안 윤 씨의 벤츠 차량을 몰고 마을을 배회했다. 그리고 편의점에 들러 생수와 밀가루를 샀다. 검사는 “차를 훔쳤다면 도망가야지 왜 현장에 돌아왔느냐. 생수와 밀가루로 범행 현장을 은폐하려던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허 씨는 “살인한 사람이 도망가지 왜 범행 현장으로 가나. 생수와 밀가루는 영화 ‘공공의 적’을 본 기억이 있어 지문을 지우려고 샀지만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허 씨는 오히려 사건 현장에 ‘제3의 인물’이 있었다며 반격했다. 허 씨 변호인은 “피해자 시신에서 수십 군데 칼에 찔린 상처가 발견된 걸 보면 원한에 의한 살인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허 씨는 피해자와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다.

○ 간접 증거로도 살인죄 인정 가능

이날 법정에서 허 씨는 “요즘 법전을 읽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 절차에 위법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는 형사 사건에서 유죄가 되려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확한 입증이 필요하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간접 증거만 있어도 설득력이 충분하면 살인죄가 인정된다. 검찰은 허 씨의 옷에서 윤 씨의 혈흔이 발견된 점, 범행 후 시신 은폐용으로 자주 쓰이는 밀가루를 구입한 점을 주요 증거로 보고 있다. 허 씨가 범행 전 포털 사이트에서 공기총과 수갑을 검색했고 범행 후 살인사건을 집중적으로 찾아본 사실도 드러났다.

윤 사장 등 유족들은 “사랑하는 남편과 존경하는 아버지를 잃은 유족의 슬픔을 헤아려 달라”는 검사의 말에 오열했다. 윤 씨의 어머니는 허 씨 측의 최종변론 때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울부짖었다.

이날 재판은 7시간 40분간 진행됐다. 검찰은 허 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선고는 다음 달 18일 오후 2시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수원=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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