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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5 (일)

33일 간 방치됐던 '느릅나루 CCTV', 복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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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경찰이 뒤늦게 느릅나무 출판사 CCTV 확보에 나섰다. 이 CCTV는 그간 ‘드루킹’ 김모(49)씨를 만난 정치인이 누군지 확인할 수 있는 물증(物據)이다. 경찰이 이날 압수수색에 나선 물품은 ▲출판사 건물 내 CCTV 영상자료 ▲건물 주변 CCTV ▲주변차량 2대 블랙박스 등이다.

◇“건물 내 CCTV는 드루킹이 설치한 것”

조선일보

경찰은 22일 경기 파주시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CCTV를 압수 수색했다.(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조선DB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 CCTV 가운데 2대는 ‘드루킹’ 김씨가 임의로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2층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 1층 카페 주변 주차장에 각각 하나씩 붙어 있다. 건물주는 “김씨 사무실 사람이 CCTV 설치하는 모습을 직접 봤다”며 “건물 형태를 바꾸는 것도 아니고, 자기 사무실 내에 구비하겠다는 것이라 제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사기관은 압수수색 이전까지는 관련 정보를 극비(極秘)에 부친다. 증거 인멸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달 21일 느릅나무 출판사를 처음 압수 수색하면서 정작 CCTV는 놔두고 철수했다.

이후 2차 압수수색 전까지 출판사 건물은 사실상 방치된 상태였다. 언론보도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고, 취재진·시위대 등이 느릅나무 출판사로 모여들었다. 21일에는 ‘좀도둑’이 느릅나무 출판사 사무실에 침입해 양주·라면 따위를 훔치는 일까지 있었다. 드루킹 김씨가 이끌었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회원들도 내키는 대로 이 곳을 출입했다.

바로 이 기간 증거가 인멸됐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드루킹 일당’이 디가우징(Degaussing·강한 자력으로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기법) 등으로 지웠을 가능성이다. 경찰도 “최초 압수수색 이후 관련자들이 지속적으로 출판사에 출입했다”고 인정한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김씨가 체포된 이후(3월 21일) 주변건물 CCTV가 더는 녹화되지 않은 것이다. 이 CCTV는 느릅나무 출판사 건물의 외곽과 주차장 쪽을 비추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건물 관계자는 “영상저장장치에 연결되는 전선(電線)이 빠져있는 상태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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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지난달 21일 느릅나무 출판사를 처음 압수수색하면서 정작 CCTV는 놔두고 철수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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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포렌식 염두에 두고 CCTV 삭제했을 가능성”
보안 전문가들은 “CCTV를 기습적으로 수거하지 않았다면, 복원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낮아 진다”고 말한다. 첫 압수수색 때 수사 사실을 인지한 공범들이 디지털 포렌식(훼손된 데이터 복원기법)을 염두에 두고 삭제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드루킹 일당’이 강력한 자기로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디가우징, 쓰레기 데이터를 여러 차례 덧씌우는 수법 등을 썼다면 복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들은 김 의원과 드루킹이 보안 메신저 ‘시그널’로 소통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동삭제’ 기능이 탑재된 이 메신저는 제3자가 메시지를 엿보거나 정부가 검열하는 게 불가능하다. 한 디지털 보안전문가는 “보통 사람들은 모르는 시그널로 대화한다는 것 자체가 보안에 상당한 지식이 있다는 방증(傍證)”이라면서 “이런 사람들에게 데이터 삭제는 그다지 어려운 수준의 기술이 아니다”고 말했다.

실제 댓글 조작 기사 목록이 담긴 핵심 증거인 이동식 저장장치(USB)는 드루킹 측에서 이미 폐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찰이 수사의 기본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분야 권위자 임종인 교수 얘기다.
“저는 뉴스 보면서 왜 이렇게 늦게 압수수색했는지 의아했습니다. (수사기관이) CCTV를 삭제할 여지를 준 것이니까요. 금융계좌추적, 압수수색, CCTV 확보는 수사의 기본 정석입니다. 댓글 조작하는 사람이니까 ‘데이터 삭제’에 전문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죠. 33일의 시간이 있었다면 (CCTV 정도는) 지울 수 있습니다.”

[김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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