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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매경춘추] 차돌과 석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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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 속담에 '차돌에 바람 들면 석돌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야무진 사람일수록 한번 타락하면 걷잡을 수 없다는 말이다. 표현 방식에서 알 수 있듯, 단단하고 강한 '차돌'은 푸석하고 무른 '석돌'보다 더 좋은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런데 대학 시절 존경하는 교수님 한 분은 내게 정반대 말씀을 해주셨다. "차돌 같은 사람이 되지 말고 석돌 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왜일까?

오래전 말씀이 새삼 떠오른 건, 얼마 전 사람 눈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나서다. 눈 망막은 2차원 평면이다. 3차원 피사체에서 반사된 빛이 망막에 상(像)으로 맺히면 시신경은 이 평면 정보를 뇌로 전달한다. 그러면 뇌는 전달된 정보를 다시 3차원 입체 이미지로 변환시켜 피사체를 인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뇌는 일정한 이미지를 '가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효율성을 위해서다. 뇌가 자주 보는 물체가 앞에 있다고 인식하면, 평소 알고 있던 것과 비슷한 모습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판단한다. 이러한 방식은 대부분 편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때론 실수를 만들기도 한다. 사전 정보에 의해 추측하다 보면 실체가 그렇지 않았을 때 뇌가 일으키는 오류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눈'으로 보는 것이 가진 다른 의미로 넓혀서도 생각해 볼 만했기 때문이다. 즉 '안구(眼球)'가 아닌 '안목(眼目)'이나 '관점(觀點)'의 의미에서다. 눈으로 사물을 보듯, 우리는 기존에 경험하고 학습해 머릿속에 축적한 정보에 따라 현상을 해석하고 판단한다. 이런 방식은 역시 많은 현상을 효율적으로 이해하는 '통찰력'으로 기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편견'과 '선입견'은 오류를 일으킬 가능성도 상당히 높다.

차돌과 석돌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교수님께서는 차돌은 더 크지 못하지만 석돌은 지속적으로 커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차돌 같은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이 단단하게 굳어져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다.

반면 석돌 같은 사람은 그 무르고 푸석해 보이는 성질 사이로 다양한 것을 받아들여 스스로를 계속 수정해 나가며 더 커가는 사람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 생각도 존중하며 수용해 나가야 더욱 성장할 있다는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다양한 세상을 경험하고 배워 왔어도 그 눈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지혜와 통찰력을 가지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교훈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 '석돌 같은 사람이 되리라. 끊임없이 풍화(風化)하며 더 큰 그릇이 되리라.'

[우창록 법무법인 율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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