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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빅토르 최 연기해 칸 가는 독일 광부·간호사 아들 유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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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경쟁 뚫고 러시아 영화 '레토' 주연 따내

과거 빅토르 최 연인 "외모 다르지만 소울 비슷" 평가

중앙일보

19일 오후 중앙일보 스튜디오에 온 배우 유태오. 러시아 영화 '레토'에서 빅토르 최 역으로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분에 진출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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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절한 전설적인 록가수 빅토르 최(1962~1990)의 데뷔 초기를 조명한 러시아 영화 ‘레토(Leto?여름)’가 다음 달 열리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과 황금종려상 트로피를 겨루게 됐다.

고려인 3세인 빅토르 최는 러시아에서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 된 국민 영웅. 옛 소련이 붕괴한 원인 중 하나로 그의 음악이 꼽힐 정도다.

이 역할을 위한 오디션엔 전 세계 2000여명 배우가 몰렸다. 연출을 맡은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낙점한 주인공은 낯선 얼굴의 한국배우 유태오(37). 20일 중앙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오랜 무명 시절로) 많이 힘들고, 지쳤을 때 ‘레토’를 만났다”면서 “첫 주연작으로 칸에 간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난다”고 들뜬 목소리로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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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토' 칸 진출 포스터.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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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는 독일에서 나고 자랐다. 아버지는 광부,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한때 농구선수를 꿈꿨지만, 무릎부상 후 영화로 눈을 돌렸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에서 연기 공부를 거쳐 10여 년 전 뉴욕에서 만난 아내와 결혼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눈썰미 좋은 관객이라면 2009년 영화 ‘여배우들’에서 고현정이 “뉴욕에서 배우로 활동하다 한국에 왔다”고 소개한 앳된 청년을 기억할지 모른다. 이후 신선한 얼굴로 주목받았지만 ‘러브픽션’ ‘자칼이 온다’ ‘일대일’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등 영화 단역에 그쳤다.

독일어?영어에 능한 그에게 돌파구가 돼준 게 3년 전 미국 SF 영화 ‘이퀄스’로 물꼬를 튼 해외 진출이다. 한국계 미국 감독 벤슨 리가 1980년대 재외 청소년들의 서울 체험기를 그린 영화 ‘서울 서칭’으론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태국 영화 등에도 출연했다. 베를린에선 직접 쓴 희곡을 공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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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슨 리 감독의 코미디 성장영화 '서울 서칭'. 넷플릭스에서 '서울 캠프 1986'이란 제목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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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레토’ 소식을 들은 건 지난해 4월 친한 고려인 영화감독을 통해서다. 자작곡 연주 영상을 러시아 제작사에 보냈다. 모스크바 행 비행기 티켓과 함께 오디션을 보러 오란 전갈이 돌아왔다. 왠지 예감이 좋았다. 2002년부터 16년간 매년 50개 넘는 오디션을 보며 얻은 ‘감’이었다. 4시간에 걸친 현지 오디션 결과는 합격통보였다.

“‘레토’는 빅토르 최가 첫 앨범을 내던 열아홉, 스무살 때 얘기에요. 그는 야성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로 유명하지만 저는 그가 쓴 가사에서 시적이고 쓸쓸한 감성을 느꼈어요. (러시아?고려인 혼혈인) 빅토르 최가 겪은 고독감, 공허함이 제 것 같았죠. 감독님이 제 해석을 좋게 봐주셨어요.”

지난해 여름 그는 촬영까지 단 3주라는 짧은 시간 동안 러시아어 대사와 빅토르 최의 노래 9곡을 완벽히 익혀야 했다. 촬영 둘째 날엔 450명 관중 앞에 공연을 했다. 공연영상과 언론 보도 등을 샅샅이 뒤져 턱을 꼿꼿이 들고 노래했던 특유의 제스처까지 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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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토' 한 장면. [사진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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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또 다른 축은 멘토였던 록스타 마이크 나우멘코, 나타샤 부부와 빅토르 최의 삼각관계. 현장을 찾은 초로의 나타샤는 유태오를 두고 “외모는 다르지만, 빅토르의 소울을 가졌다”고 평했다. 유태오는 “빅토르 최와 가장 가까웠던 분이 인정해주셨다는 생각에 배역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레토’는 반정부적 성향으로 푸틴 정부에 눈총받던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촬영 막바지 ‘공금 횡령’을 혐의로 가택 연금되며 난항을 겪었다. 동료들 도움으로 영화는 간신히 완성됐다. 유태오는 “미행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처음 겪었다”면서 “그럴수록 오로지 빅토르 최를 더 잘해내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요즘 마블 만화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그는 기회만 된다면 차세대 헐크로 지목된 한국인 캐릭터 ‘아마데우스 조’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뭔가 잘될 것 같다가 다시 배고파진 적이 많아서 이젠 김칫국은 안 먹어요. 근데 한국에선 배우로 꼭 인정받고 싶어요. 제가 ‘우리나라’ 사람이니까요. 자식이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은 것처럼요. 제가 힘들었던 경험을 잘 쌓아뒀다가 언젠가 아시아 배우의 해외 진출을 돕는 기관을 만드는 것도 꿈입니다.”

“얼굴이 아그리파 조각 같군요. 조명을 갖다 댈수록 다른 그림이 입혀집니다.” 카메라 앞에 선 배우 유태오(37)를 두고 권혁재 사진전문기자가 말했다. 빛이 세어질수록 깊어지는 그의 눈매는 매섭게도, 쓸쓸하게도 보였다. 그러다 활짝 웃을 땐 아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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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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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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