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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0 (금)

김정은, ‘풍계리 핵실험장’ 버리고 ‘경제 건설’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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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뉴스분석]

당 중앙위 전원회의서 ‘핵·경제 병진노선’ 종료 선언

‘사회주의 경제 건설 총력 집중’ 새 노선 채택

ICBM 시험발사 중지 등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

“국제사회와 긴밀한 연계 적극화” 강조

비핵화로 국제경제 체제 합류하려는 포석



한겨레

평양 대동강변에 짙게 깔린 안개를 뚫고 ‘평양의 아침’이 열리고 있다. 평양/강창광 기자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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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겸 노동당 위원장이 국가 전략의 핵심 축을 ‘핵’에서 ‘경제’로 바꾼다고 공식 선포했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체제를 이끄는 영도기관인 조선노동당의 중앙위원회 제7기 제3차 전원회의(20일)를 통해 공식적으로 내놓은 중요한 전략적 방향 전환이다.

김 위원장은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우리 당의 전략적 노선이 밝힌 역사적 과업들이 빛나게 관철됐다”며 “병진노선이 위대한 승리로 결속”됐다고 밝혔다. 2013년 3월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핵·경제 병진노선’을 공식 종료한다는 선언이다. 6차에 이른 핵실험과 잦은 미사일 시험발사로 지난해 한반도를 전쟁 위기로 몰아넣은 북한의 국가전략적 기반이 병진노선이었다는 점에서, 이 노선의 종료 선언은 한반도 정세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이 당의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밝혔다. ‘핵’에서 ‘경제’로 국가발전전략의 중심축을 바꾸겠다는 선언이다.

김 위원장의 이런 전략적 전환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세계적 주목의 대상이 됐다. 특히 “이제 우리에게 그 어떤 핵시험과 중장거리, 대륙간탄도로케트 시험발사도 필요 없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북부 핵시험장도 자기의 사명을 끝마치었다”는 김 위원장의 지침에 따라, 당 중앙위 전원회의가 결정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21일부터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조처가 그랬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는 시선이 국제사회 일부에서 여전한 가운데 나온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공적 결과물을 얻어내고 싶다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조선중앙통신>이 21일 이런 내용을 보도한 직후에 “모두를 위한 진전”이자 “매우 좋은 뉴스”라며 “우리의 정상회담을 고대한다”고 환영했다. 청와대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의미 있는 진전”이자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한 매우 긍정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북한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이 병진노선 종료의 배경으로 “국가 핵무력 완성”, “핵무기 병기화 완결” 등을 강조한 대목을 근거로, 진지한 비핵화 의지의 표명이라기보다는 핵국가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핵보유 선언이라는 평가도 미국 등에서 나온다. 실제 김 위원장은 “핵을 포기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김 위원장의 이번 결정과 조처에 대한 해석의 편차가 큰 까닭이다. 하지만 다수설은 북한의 의미있는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라는 쪽이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22일 김 위원장이 남쪽의 특사단 방북(3월5일)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3월26일)을 통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며 비핵화 실현에 힘을 다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우리의 입장”이라고 거듭 밝힌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 원장은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북-미 정상회담을 합의하고, 북-중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었던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북쪽의 이번 조처는 비핵화 협상의 사전 환경 조성을 위한 선제적 신뢰구축 조처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분석에 밝은 전직 고위 관계자는 “아직 조심스럽긴 하지만 김 위원장이 ‘다시 돌아갈 다리를 불사른 조처’로 볼 수도 있다”며 “이번 결정과 조처는 김 위원장이 앞으로는 ‘경제 올인(다걸기)’을 하겠다는 배수진”이라고 해석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특히 김 위원장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일방적으로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사실에 주목했다. 핵보유국 가운데 핵실험장을 폐쇄하고 더는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선례가 없을 뿐만 아니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카드는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한테 ‘선물’로 내놓을 수도 있는 ‘빅 카드’라는 것이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싶어 하는 김 위원장의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지적이다. 다른 원로 전문가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은 통상 15차례 넘게 시험발사를 해야 정확성과 안전성을 확보하는데 북쪽이 그렇게 하지 않고 이번에 바로 시험발사 중지를 선언한 것은, 이를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간주해온 미국을 의식한 우호적 조처”라며 “두 정상회담을 앞두고 상당히 기분 좋은 출발”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 전문가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며 “북쪽의 병진노선 종료 선언이 핵 폐기를 전제로 한 것인지 핵 완성을 전제로 한 것인지 불분명한 만큼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핵 폐기 조처를 어떻게 이끌어낼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2012년 집권 이후 북한 경제의 ‘시장화’를 꾸준하게 추진해온 김 위원장이 전원회의 결정서를 통해 앞으로 “주변국들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와 대화를 적극화해 나갈 것”이라고 공언한 대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위한 유리한 국제적 환경 마련”과 “조선반도(한반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 수호”라는 2대 목표를 명확히 한 점이 특히 그렇다. 앞으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군사적 적대 해소와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 등과 관련한 남·북·미 3자의 합의가 크든 작든 이뤄질 텐데, 그 합의의 이행 과정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이완 및 북한의 국제경제 체제 접근성 확대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이번 결정과 조처를 통해 내비친 속내 또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하는 대신 군사적 적대를 해소해 북한의 체제 안전을 보장받고 국제경제 체제의 일원으로 합류할 열쇠를 얻겠다는 게 핵심인 듯하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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