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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선진국’ 신기루는 어떻게 40년간 한국을 지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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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종태 고려대 아연 연구교수

서구 중심주의 ‘선진국’ 담론

역사적 계보와 의미 추적·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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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탄생
-한국의 서구 중심 담론과 발전의 계보학
김종태 지음/돌베개·1만7000원


한때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소득이 3000달러가 되면 선진국이라고 했다. 국민 모두가 선진국을 만들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달리고 또 달렸다. 하지만 3000달러, 아니 1만 달러, 2만 달러를 넘어도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오히려 신기루 같이 가물거리는 ‘선진국 예법이 그러하니 따라야 한다’는 윽박지름과, ‘게으르면 후발국가에 추월당할 수 있다’는 위기 의식만이 난무했다. 어느덧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했다는 지금도 우리의 문제의식은 지난 40년 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선진국 문턱’에서 마냥 맴돌고 있다.

도대체 왜 우리는 이렇게 선진국에 집착하게 됐으며, 이것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사회학자 김종태(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인문한국 연구교수)가 쓴 <선진국의 탄생: 한국의 서구 중심 담론과 발전의 계보학>은 지난 100년간 한국인이 좇아온 국가정체성과 세계관, 특히 그 결정체로서 선진국 담론의 역사적 계보를 방대한 자료 분석으로 해명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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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면서 “5년 안에 선진국 건설”이란 구호를 내걸었다. 그해 6월17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자신의 여의도 선거사무소에서 자신을 공개 지지한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를 환영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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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담론은 주로 경제성장, 국민소득 등으로 측정되는 국가발전 수준을 선진국의 요건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발전주의적이며, 서구 특히 미국이 이룬 산업화와 근대화의 모습을 선진국의 전형으로 상상한다는 점에서 서구 중심적이다. 이 담론은 세계 각국을 후진국과 선진국으로 이분화, 위계화한 뒤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을 정당화한다. 우리 사회 또한 오랫동안 근대성의 원형이 우리 밖에, 특히 서구 선진국에 있다고 여기면서 호된 선진국 결핍증을 앓아왔다.

이런 우리 모습은 1960~70년대 조국 근대화를 내걸고 급격한 국가변화를 추구한 박정희 정권 시기의 역사·사회적 구성물에 기인한다. 그때 이후 한국 사회는 모든 열망을 발전주의에 헌신하며 선진국을 국가의 목표이자 청사진으로 추구해왔다. 미국으로 대변되는 ‘발전된’ 선진국에 비해 당연히 한국은 불완전한 존재, 모자란 존재로 표상되어야 했다. 이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체계를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을 우리 스스로 내면화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발전주의적 색안경에 익숙한 지금 우리 눈에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박정희 정권 시기 이전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한 담론은 발전 담론과 그 하부 담론격인 선진국 담론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19세기 말 이래 오랜 기간 한국 사회를 지배한 담론은 다름 아닌 문명 담론이었다. 예컨대 이승만 대통령이 주창한 대한민국의 청사진은 돈 많은 선진국이 아니라 ‘문명한 나라’, ‘개명한 나라’였다.

문명 담론에서 야만 사회 혹은 야만국으로 규정된 나라들이 제2차 대전 이후 지구적으로 부상한 발전 담론에서는 경제적으로 뒤떨어진 저발전 사회, 후진국으로 재구성됐다는 점을 이 책은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주목할 점은, 문명 담론 시기 ‘문명국의 야만국에 대한 패권’이 발전 담론에서 ‘선진국의 후진국에 대한 패권’으로 옮겨졌음에도, 서구의 비서구에 대한 우월적 지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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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일본 기타큐슈대 교수. 이동준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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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담론의 틀에선 비록 경제적으론 변변치 않았지만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명국으로 자위하던 한국은 선진국 담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부유한 선진국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좇는 신세가 됐다. 시대적 맥락은 조금씩 다르지만, 박정희의 근대화에 대응되는 김영삼의 세계화나 이명박의 선진화 구호도 ‘선진국 문턱’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주문에 다름 아니었다. 여기에는 한국 사회의 진보도, 보수도 토를 달지 못했다. 지금도 수많은 서구(미국) 중심주의자들은 서구의 잣대로 한국 사회를 재단하고 그들의 선진국을 끊임없이 호명한다.

그렇다면 선진국에 대한 헛된 욕망은 접어야 하나. 그렇지는 않다. 현재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은 한국이 선진국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오히려 서구 중심의 선진국 담론이 설정한 선진국에 집착했기 때문에 생겼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우리 밖에서 유령처럼 떠도는 선진국만 좇는 게 아니라 우리 안의 선진국에 대해서도 상상의 나래를 펴는 지혜를 이 책은 묵직하게 던지고 있다. 학술적 내용이지만 쉽게 풀어 쓴 데다 무엇보다 지금 우리 이야기를 다룬 덕에 술술 읽힌다.

이동준 기타큐슈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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