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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임종 순간에도 손발 묶고 심폐소생…이런 곳이 병원인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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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2일 이상 격리·강박돼 있던 김형진(가명·45살)씨가 사망 상태로 발견되자 당직의사 안 아무개씨가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다. 그 와중에 보호사와 간호사가 손과 발을 묶은 끈을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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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손과 발, 가슴을 단단히 묶는다. 환자는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침대에 결박되어 누워 있다. 299개 병상을 갖춘 작은 정신병원인 춘천ㅇ병원에서 환자는 구원받지 못했다. 한겨레가 입수한 시시티브이 영상에서 환자는 매일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다 서서히 죽어갔다. 의사도, 간호사도, 보호사도 적절한 구호조처를 외면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그 죽음의 동조자인 것처럼 보인다.



정신병원은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곳이다. 그러나 치료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꽁꽁 묶어놓고 방치하는, 고문에 가까운 일들이 지금도 어느 정신병원에서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한겨레는 3회에 걸쳐 정신병원의 격리·강박 실태를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한겨레

김형진(가명·45)씨는 호흡이 정지된 상태에서도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했다. 그나마 가슴 억제대가 풀린 게 다행이었다. 의사가 두 손으로 흉부를 압박하는 동안 간호사와 보호사가 발에 묶인 끈을 풀려고 다급히 움직였지만 쉽지 않았다. 팔다리의 강박을 푸는 데만 12분이 소요될 정도였다. 한겨레가 확보한 춘천ㅇ병원의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에는 규정을 위반해 수십시간 환자를 강박한 의료진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





팔다리 끈 푸는 데만 12분이나 걸렸다





격리·강박이란 치료 또는 보호의 목적으로 이뤄지는 신체 제한 조치다. 독방에 가두고 손과 발을 묶는다. 보건복지부와 대한신경정신의학회가 제정한 격리 및 강박 지침은 “폭력성이 높아 다른 사람을 해할 위험이 높은” 경우 격리·강박을 시행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지시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형진씨 입원 기간 중 ㅇ병원 폐쇄병동 보호실을 촬영한 영상 67.1GB 분량(296개 폴더에 4067개 파일)과 병원 쪽 격리·강박 시행일지 등 의무기록지, 각종 경찰 자료를 보면, 지침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격리·강박 지침에 따르면, 강박 시 최소 30분마다 관찰 및 평가를 해야 하고, 억제대를 사용할 땐 1시간마다 간호사정(건강 상태 체크)을 하고, 2시간마다 적절한 사지운동을 시켜줘야 한다.



만 19살 이상 성인의 강박은 1회 최대 허용시간이 4시간이고 연속 8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 위험성이 뚜렷하게 높아 허용시간을 초과하여 격리·강박해야 할 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대면 평가를 거쳐 연장할 수 있고, 반드시 전문의 4인 이상으로 구성된 다학제평가팀이 사후 회의를 실시하고 적합성 여부를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형진씨의 총 5차례 강박 가운데 첫 강박은 3일6시간30분(78시간30분)으로 1회 최대 강박 시간의 거의 20배에 달했다. 전체 강박 시간은 251시간50분으로 입원 기간의 87%가 묶인 상태였다. 하지만 유족이 확보한 의료기록에선 적합성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은 격리·강박 시행일지에 30분에 한번씩 활력징후 측정(바이털 사인, 혈압·맥박·호흡·체온 점검) 및 강박 부위 순환을 확인했다고 기록했지만, 영상에선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다. 혈압을 재고 체온을 확인하는 모습이 일부 나올 뿐, 손목 억제 부위의 혈액순환 점검은 하루 1~2회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발목 부위의 혈액순환 점검은 전무했다. 강박된 형진씨의 자세를 바꿔주거나 관절을 움직여주는 장면은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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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선 찾기 힘든 환자의 폭력성





폐회로텔레비전 영상을 보면, 강박 행위를 다섯 차례나 이어가야 했는지도 의문이다. 정신건강복지법 75조 2항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위험에 이르게 할 가능성이 뚜렷하게 높고 신체적 제한 외의 방법으로 그 위험을 회피하는 것이 뚜렷하게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강박을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지침에 따르면 △자살 또는 자해의 위험이 높은 경우 △폭력성이 높아 다른 사람을 해할 위험이 높은 경우 △정신적 및 신체적으로 환자 스스로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할 우려가 높은 경우 등에 실시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에선 형진씨의 심각한 폭력행위를 찾아보기 어렵다.



형진씨는 2021년 12월27일 편의점에서 소란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강제입원됐다. 응급입원은 정신건강복지법상 의사와 경찰관의 동의만 있으면 가능하다. 형진씨를 병원으로 이송한 119의 구급활동 일지에는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나, 장갑을 계속해서 꼈다 벗었다 반복하는 모습 관찰됨. 양극성 장애 정동장애 적응장애 진단력, 최근 잠을 못 잤다고 함”이라고 기록돼 있다. 12월27일 오전 5시33분 응급입원된 형진씨는 보호실에 들어서자마자 곧장 두 손과 두 발, 가슴 등 5곳을 강박(5포인트 강박)당했다.



첫날 형진씨는 간호사 등과 실랑이를 벌였다. 사지가 묶인 상태에서 보호사의 바지를 잡거나 얼굴을 쳤다. 둘째 날엔 양손이 풀린 상태에서 간호사에게 짜증을 내며 컵을 집어 던졌다. 하지만 이후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비틀고, 묶여 있는 오른손으로 벽을 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3일째인 12월29일 오전엔 양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식사를 하며 간호사와 근거리 대화를 나눴다. 이후 다시 묶인 형진씨는 침대에 누워 체념과 망연자실, 괴로움과 고통의 표정을 반복해 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강박은 더 심해졌다. 초기엔 식사 시간에 한해 양손과 가슴을 풀어주고 두 발 강박만 지속했으나, 다음 식사엔 양손을 풀지 않고 가슴 강박만 푼 채 밥을 먹였다. 1월6일 오전 11시13분과 오후 4시47분에는 간호사가 가슴조차 풀지 않고 침대를 비스듬히 눕힌 채 형진씨에게 밥을 먹였다. 영상 속 형진씨는 갈수록 순응하는 태도였고, 공격성은커녕 그럴 기력조차 없는 상태였다.



영상 속 형진씨의 상태와 달리 격리·강박 시행일지엔 문제적 행동이 보인다고 적혀 있다. ㅇ병원은 형진씨가 5번째 강박을 당하고 있는 도중인 2022년 1월5일 낮 12시에 “투약 거부하며 갑자기 흥분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보여서 의사 지시 아래 5포인트 강박”이라고 적었다. 밤 9시30분 일지엔 “기저귀를 갈아드리려 하는데 소리를 지르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임”이라고 기재했다. 하지만 실제 그 시간대 영상 속 형진씨는 간호사가 기저귀가 젖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하의 윗부분을 건드리자 축 늘어진 채 웅얼거릴 뿐이었다.



ㅇ병원은 장시간 연속 격리·강박이 필요했냐는 한겨레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았다. 병원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경찰에는 “피해자가 입원 당시부터 타인에 대해 심한 공격성을 보이고 실제 치료진에게 입원 당시 발길질을 하는 등 타해를 가하는 모습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약물 치료를 시작했으나 정신병적 상태에서 지속적인 공격행동을 보였으며, 한 차례 화장실을 직접 데리고 들어간 상황에서도 주치의의 가슴을 치면서 목을 잡으려는 등 위협행동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자·타해 위험’이 컸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영상에는 이와 관련한 장면이 없고, 병원도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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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이영문 전 국립건강정신센터장이 고 김형진씨의 입원기간 영상을 본 뒤 춘천예현병원이 작성한 의무기록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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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전·탈수…사망 부르는 장시간 강박





폐회로텔레비전 영상과 의무기록지를 확인한 전문가는 강박 가이드라인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정신병원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정신과 전문의인 이영문 전 국립정신건강센터장은 “짧은 기간 고용량의 약물을 투약했고 강박 시간도 너무 길다”고 말했다.



이 전 센터장은 특히 ‘탈수’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강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과 발 등을 많이 움직이면 몸에 물이 부족해지는데 여기에 주사제로 인해 입마름 현상까지 생겨 탈수현상이 악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형진씨에게 제공된 수분과 식사는 횟수가 적고 불규칙했다. 12월27일과 31일, 2022년 1월1일에는 온종일 한 번도 밥을 주지 않았다. 1월5일과 6일 강박일지와 경과기록지엔 형진씨가 배뇨 곤란을 호소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진료기록을 감정한 아주대 정신과는 “향정신성의약품 등 약물의 병용 투여로 인한 부작용” 가능성을 언급했다.



장시간 무동작은 신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에게도 피가 떡처럼 뭉쳐지는 혈전을 유발해 폐색전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2005년, 2013년, 2017년 격리·강박에 따른 사망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이 문제를 지적해 왔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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