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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궐석재판에서 일제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이상설은 간도, 하와이, 상하이를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 다니며 독립운동을 벌였다. 조국의 군대 해산을 바라본 안중근 역시 망명길에 올라 간도를 거쳐 1909년 의병활동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왔다. 두 애국독립투사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뤼순 감옥에서 이상설에 대해 “재사로서 법률에 밝고 필산(筆算)과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에 능통하다. … 애국심이 강하고… 동양평화주의를 친절한 마음으로 실천하는 사람이다”라고 평을 남겼다.
▷최근 일본과 러시아 극동문서보관소에서 ‘일제 스파이의 대부’로 불리던 식민지 조선의 첫 헌병대장 아카시 모토지로의 비밀 보고서가 발견됐다. 이 보고서는 “안응칠(안중근 의사)의 정신적 스승이자 사건 배후는 이상설” “안응칠이 가장 존숭(尊崇)하는 이가 이상설”이라고 언급했다.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유학자였지만 이상설은 화장하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망국의 신하로 묻힐 조국이 없고 제사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었을까. 요즘 밖으로는 구한말을 연상시킬 만큼 나라가 긴박하고 안에서는 혼돈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선생의 기개와 애국심이 그리워진다. 22일이 선생의 101주기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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