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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지금,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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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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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쿠르 수업을 듣고 있는 서울 오디세이학교 하자센터 학생들. 한겨레교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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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해묵은 교육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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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리스트


한국사회의 교육에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교육시스템이 고비용에, 성과는 미흡하고, 학생은 불행하며, 교사는 무기력하고, 사회는 필요한 인재를 제대로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의 위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교육의 위기는 수십년간 한국사회를 괴롭혔다.

교육에 대한 반복적인 위기 의식은 이제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다. ‘교육백년지대계(敎育百年之大計)’는 이제 상투적인 표현에 다름없다. 몇년에 한번씩 시행되는 주기적 교육 개혁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실험에 불과해졌다고 하면 과장일까?

필자는 1986년 대입 학력고사 시험을 쳤다. 문과의 경우 17개 과목, 이과의 경우 16개 과목의 시험을 보았어야 했는데, 필자는 문과를 지원하여 17개 과목의 시험을 치렀다. 그 전년도인 2015년 대입 학력고사는 제2외국어가 의무사항이 아니라서 각 16개 과목, 15개 과목이었으며, 2017년에는 과목이 대폭 줄어 9과목으로 시험을 치렀다. 당시에도 끊임없는 실험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4월11일 교육부는 2022년도 수능 평가방법으로 전과목 절대평가안, 절대평가를 기반으로 하되 일부 과목에 대해 원점수를 제공하는 원점수제안,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상대평가안의 세가지 안을 제시했다. 3가지 안에 대해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 실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대입과 연계되어 부유한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의 접근을 논박하려는 게 아니다. 교육제도 자체의 변혁과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시대의 변화 속도가 빨라져서, 교육의 주변머리가 아닌 그 핵심에 바로 접근하여, 논의하고 고민하고 대화하며 협의하고 협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루하고 진부하지만 ‘교육이 백년지대계’라는 주장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교육 부문에 대한 원려심모(遠慮深謀)가 필요하다.



15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교육 시스템

우리는 학교에서, 혹은 교육 시스템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산업화 시대 이후의 교육은 건전한 시민사회의 일원과 노동자를 배양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교육 시스템은 학생의 노동시장에서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구성되어 왔고, 유지되었다.

미국 힙합 가수이자 시인인 프라이스 이(Price Ea)는 현재 교육 시스템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는 콘텐츠를 남겼다. 유튜브에 올린 동영상에서 그는 현재 교육 시스템을 비판했다. 자동차와 전화기의 현재와 150년 전을 비교하면서, 이들에게 파괴적 혁신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이에 반해 교육현장은 150년 전과 현재가 동일한 것을 제시하며, 교육 시스템에 근본적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 교육시스템은 산업혁명의 진행에 따라 사회적 요구에 의해 개발되고 발달된 것에 불과하다. 이른바 제4차산업혁명, 제2기계시대, 지식사회, 후기자본주의사회 및 포스트-휴먼이 언급되는 현재, 우리는 다시 한번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가?

산업사회에서 교육의 핵심적인 역할과 목적은 미래의 노동자인 피교육자의 시장가치를 증진하는 것에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비판적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적어도 고등학교까지의 기초교육에서는 건전한 시민을 키우는 것이 보다 중시될 수 있다. 민주주의 시민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전하고 건강한 시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떻든 피교육자의 시장가치를 증진하는 것이 미래에도 교육의 핵심 목적이 된다고 인정하더라도,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목적과 연결돼 있지 않다.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미래 10대 역량과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 과목을 연결해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세계경제포럼은 2017년 9개 산업 분야의 세계 유수 기업 임원 3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2020년에 가장 중시될 10대 역량을 뽑아냈다. 2015년 결과와 비교할 때, 2020년엔 품질관리 역량과 경청 역량이 빠지고, 정서적 지능과 인지적 유연성이 추가되었다. 세계경제포럼 조사에 따르면 복잡한 문제 해결, 비판적 사고, 협조 역량, 협상 역량, 인지적 유연성 등에 높은 점수가 매겨졌다. 논쟁의 여지가 없지 않으나, 복잡한 문제해결 역량과 비판적 사고, 인지적 유연성 등 10대 역량의 일부에 대해서는 필자도 동의한다.

세상은 본질적으로 복잡계이다. 즉, 복잡한 문제해결 능력이 중시될 수밖에 없다. 학문적으로는 이론의 도출을 위해 세상을 단순화하나, 이는 학문의 이야기이며 세상은 본질적으로 복잡계에 속한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지수적 발달과 불확실성 등의 증가는 문제를 해결할 때 맥락적 상황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문제는 인구구조의 변화, 3D 프린팅 건축으로 인한 건축비 절감, 원격 근무/교육/의료로 인한 도시의 확장과 거주의 이동, 에너지 제로 주택의 선호에 따른 주거의 변화 등 복합적인 고민을 전제로 한다. 단기적 수요와 공급이 아파트 가격은 결정되겠으나, 그 이면에는 맥락적이고 장기적인 전망을 전제로 한다.

지식은 본질적으로 휘발성을 지닌다. 지식의 휘발성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이 비판적 사고와 인지적 유연성이다. 항구적인 진리로 남는 지식은 예외적이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존 지식 중 반이 옳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는 지식반감기는 나날이 단축되고 있다. 현재 평균적으로 지식반감기는 10년여에 불과하다. 즉, 10년전 배운 것의 반은 잘못된 지식이라는 의미다. 또한 새로운 지식의 등장 속도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 지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식이 넘쳐나며, 이로 인해 적정한 지식을 선택하는 것이 핵심 역량의 하나가 되었다. 여기에는 거짓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역량까지 포함한다. 지식의 휘발성 및 오류에 대응하는 기본 역량이 비판적 사고 역량이다. 지식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이 인지적 유연성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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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로 인해 뒤틀린 한국의 교육과정

한국의 교육과정은 세계경제포럼이 꼽은 10대 역량을 얼마나 육성하고 있을까? 10대 역량과 고등학교 교육과정과의 연계성을 분석해 봤다. 현재의 고교 교과과정은 2015년 개정된 것으로 2018년부터 적용됐다. 해당자료는 한글 위키피디아(키워드: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과목)에서 가져왔다. 분석은 필자가 독자적으로 진행한 것으로,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엄밀성이 부족할 수 있으나, 개략적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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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등학교 교과과정과 세계경제포럼에서 분석한 10대 역량 중 5개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이는 해당 교과목의 내용에 따른 형식적 분석이며 실질적 분석은 아니다. 이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이 입시를 위한 시험으로 심하게 변형되었기 때문이다.

역사교육은 역사적 맥락에서의 인과관계와 흐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기초적 전망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는 것이 목표다. 특정한 연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암기하는 것은 역사교육과 관련이 없다. 2018년 한국사 영역 문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역사적 인과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단순 암기와 관련한 문제였다. 역사 교육의 목적이 역사적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와 인간의 가능성 탐구라면, 2018년 수능 한국사 영역 문제의 대부분은 역사 교육의 목적과는 관련이 많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2018년 3월24일 치러진 서울시 7급공무원 시험 한국사 7번 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7번 문제는 역사서의 편찬년도를 물어보는 것으로 암기력을 점검하는 문제조차 되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를 통해서 수험자에게 어떤 역량을 키울 것을 요구하는지도, 어떤 역량을 검증하려고 하는지도 알 수 없다.

2018년 대입 수능 수학과목의 문제는 30개이다. 100분에 30개 문제를 맞춰야 한다. 다른 나라와 엄밀한 비교를 하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100분에 30개를 풀기 위해서는 수학공식에 대한 암기를 필요로 한다. 수학공식의 암기가 필요할 수도 있고, 그래야 할 수도 있지만, 암기는 비판적 사고와 큰 관련이 없다.

결국 한국의 고등학교 교육은 10대 역량을 본질적으로 함양하는 데 큰 기여를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해력 추이와 연계시켜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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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추이(구본권,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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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가치보다 시민적 가치 우선해야

문해력은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역량이다. 문해력에 대한 검사는 의약품 복용 안내서를 읽고 이를 이해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검사로 측정한다. 위의 문해력 추이를 보면 20대 초반에 한국은 OECD에서 3위 정도이나 25세까지 정체되다가 하락하기 시작한다. 40대에 들어서 OECD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곡선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핀란드, 일본 및 스웨덴은 30대 중반까지 문해력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해력이 낮아지는 직접적인 이유는 독서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의 암기 교육으로 변질되면서 지적 호기심이 낮아진 것이라는 진단은 필자가 학부모를 겪으면서 경험한 것에 근거했다. 고등학교 교육이 입시 위주로 경쟁과 암기를 위주로 해, 학생에게 학문과 공부에 흥미가 없도록 만든다는 것이 학부모로서의 경험이다. 필자가 대학에 강의를 나가서 학생들과 대화를 할 때도, 배움과 지식에 대한 열정이 있는 학생을 우리 사회에 필요한 만큼 찾기가 어려웠다.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것을 반드시 세계경제포럼과 연계할 필요는 없다. 한국사회 고유의 고민이 녹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STEM 혹은 STEAM을 실질적으로 교육에서 추구해야 하는 가치로 보고 있다. 이는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rt, Mathematics)를 의미한다. 독일은 노동4.0 백서에서 디지털 역량(Digital Literacy)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래학자는 바람직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신감으로서의 미래 역량(Futures Literacy) 혹은 자아 효능감(Self-Efficacy)(Park Sung Won, 2017)이 필요하기도 하다.

또 학교교육이 반드시 피교육자의 미래 시장 가치를 늘리는 것에만 천착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경제 시스템보다 민주주의 시민사회가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 시스템은 도구이지 목표가 아니다. 보다 근원적 가치는 민주주의 시민사회 체계이다.

윤기영/퓨처리스트, 에프엔에스 미래전략연구소장

synsaje@gmail.com

참고

구본권. 2016.07.17. “북유럽의 성인 의무교육”. 한겨레. (OECD의 Survey of Adults Skill(PAAC). 2013. P.193을 재인용)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과목. 한글 위키피디아 검색. 2018.04.15 (https://ko.wikipedia.org/wiki/)

Alex Gray. 2016.01.19. The 10 skills you need to thrive in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 WEF. (https://www.weforum.org/agenda/2016/01/the-10-skills-you-need-to-thrive-in-the-fourth-industrial-revolution/)

Park Sung Won. 2017. “A possible metric for assessing self-efficacy toward postulated futures”. Foresight

Price Ea. 2016.09.26. I Just Sued The School System !!! (https://www.youtube.com/watch?v=dqTTojTij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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