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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김기식 ‘외유성 출장’ 논란…꼭 ‘여비서’를 강조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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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보수야당·언론, ‘원장과 여비서’ 프레임 씌워 자극적 보도

여의도 보좌진들 “우린 여비서 아니라 함께 일하는 동료”

“미투 물타기하며 차별 만드는 자한당이 미투 대상” 비판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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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 셋째)와 소속 의원들이 9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사퇴와 방송법 처리 등을 촉구하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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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외유성 출장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김 원장은 2015년 19대 국회의원 재직 시절 피감 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소(대외연)의 지원을 받아 이탈리아 로마로 2박3일 출장을 다녀왔다. 김 원장은 “관련 기관에 혜택을 준 사실이 없다”고 해명했고 ‘공익적 목적’이라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혜택 거래 여부와 상관없이 국회의원이 감사해야 할 기관의 지원을 받아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건 분명히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김 원장이 의원 임기 만료 10일 전에도 유럽으로 8일 동안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판은 더욱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김기식, 의원 임기만료 10일 전에도 유럽으로 8일간 외유성 출장”) 특히 김 원장은 2016년 ‘김영란법’ 입법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출장 시기가 법 시행 이전이긴 하지만 김영란법의 취지를 생각하면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했다’는 식의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어 보인다. 비판의 핵심은 그것이어야 했다.

■ 의도가 뻔히 보이는 ‘여비서’ 의혹 제기와 언론 보도 외유성 출장 논란에도 김 원장이 물러나지 않자, 야당과 보수 언론은 또 다른 측면을 부각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제의 출장에 동행한 여성 비서가 ‘수행 당시 정책비서가 아닌 인턴 신분이었다’는 비판이었다.

한 발 더 들어가 그 인턴은 ‘여성’이었으며 ‘출장을 다녀온 뒤 비서로 초고속 승진’했다는 의혹 제기도 나왔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책보좌로 인턴이 동행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며 “이 여성 인턴은 김 원장과의 ‘황제 외유’ 이후인 2015년 6월 9급 비서로 국회 사무처에 등록됐고, 8개월 만에 7급 비서로 승진했다”고 말했다. 출장을 수행한 비서의 승진 배경에 뭔가 있는 것처럼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보수 야당은 ‘여비서’ 프레임을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은 논평에 ‘여비서’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김기식 원장 사퇴 촉구 의원총회 현장에는 빨간색으로 강조된 ‘女인턴동반’ 손팻말이 늘 등장했다.

자유한국당이 던진 ‘여비서’ 프레임은 보수 언론의 입맛에도 잘 맞았다. 보수 언론 역시 사건의 본질을 벗어나 ‘여비서’라는 단어를 자극적으로 노출하기 시작했다. 기사들의 제목을 한번 살펴보자.



김기식, 여비서와 해외출장…정치권 “이런 경우 못봤다” - 4월5일 <조선일보>

김기식 원장의 수상한 여비서…인턴신분으로 해외출장 동행 - 4월9일 <조선일보>

여비서와 해외여행 가려고 피감기관 때렸나요? - 4월7일 <조선일보>

“김기식 동행 女정책비서는 20대 인턴” - 4월9일 <문화일보>

거절한 의원도 있는데…“여비서까지 대동 이례적” -4월5일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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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금감원장 기사에 ‘여비서와 출장’ ‘여비서와 해외여행’ 해시태그를 단 조선일보. 조선일보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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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비서와 해외여행’, ‘수상한 여비서’, ‘20대 인턴’이라는 제목들은 김 원장과 해당 비서 사이에 부적절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상상하도록 만든다. <조선일보>는 아예 김 원장 기사 하단에 ‘#여비서와_해외여행’, ‘#여비서와_출장’이라는 해시태그까지 달아 그 의도를 더욱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문화일보>는 해당 비서의 SNS를 찾아내 얼굴 사진을 보도하기도 했다. 10일치 초판으로 발행된 <문화일보> 5면에는 ‘SNS에 올린 女인턴 로마 기념사진’이라는 설명과 함께, 비서의 얼굴이 반만 모자이크된 채 게재됐다. 일부 지역에만 배달되고 다음 판부터 삭제되긴 했지만, 명백한 사생활 침해였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있다면 그 대상이 누구이건 의혹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조선일보 등은 의혹을 제기하면서 ‘여비서 대동’이란 정보를 유독 부각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보좌진의 동행을 문제 삼을 것이라면 그의 성별이 아니라 보좌진 동행이 필요했는지 여부와 보좌진이 그 업무에 필요한 자격을 갖추고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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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원장과 출장에 동행한 인턴의 사진을 공개한 <문화일보> 10일치 초판. 사진 <미디어오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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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과 여비서’ 프레임은 2차 가해다 보수 언론과 자유한국당이 만들어낸 ‘정치인과 여비서’ 프레임은 자연스레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수행비서 성폭행 사건을 연상하게 한다. “해외 출장에 여비서가 동행한 것도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국내 출장을 가더라도 방을 잡는 문제 등 때문에 이성 보좌진이 수행하는 경우가 없다”(조선일보)는 보수 언론의 보도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당시 “왜 여성을 수행비서로 썼냐”는 문제 제기와 비슷한 맥락이다. 안 전 지사 성폭행 사건 당시 일부 언론에서 피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성폭행 사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책임을 일부라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행태를 보였듯이, 이번 김기식 원장의 비서 역시 성별이 여성이기 때문에 김 원장으로부터 특혜를 받았고 부적절한 관계로까지 이어진 것 아니냐는 음모론적 시선을 고스란히 받게 됐다.

자유한국당은 안 전 지사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 ‘제1차 전국여성대회’를 열고 ‘여성들의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응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스스로 되돌아보고, 갑질과 폭력, 우리 안의 시스템을 자성하고 성찰하는 계기로 만들어가겠다”고 했고, 중앙여성위원장인 김순례 의원은 “자유한국당은 성희롱·성폭력마저 내로남불, 적반하장으로 일관하는 청와대와 여권의 행태에 끝까지 맞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투 운동은 단순히 여성들이 그동안 겪었던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 만연한 성차별과 성폭력 문제를 고민하고, 남성 중심적 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미투를 응원하겠다던 자유한국당은 정치적 목적으로 ‘여비서 프레임’을 제기하면서 안 전 지사 성폭행 피해자와 김 원장의 수행비서, 나아가 세상의 모든 ‘여비서’ 들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셈이다.

■ 국회 보좌진들 “우리는 여비서 아니고 동료다”

보수 언론과 보수 야당의 행태에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현직 보좌진은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국회에 일하는 친구들과 이번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정말 화가 나는 것은 상대적으로 남성중심적이었던 국회에서 여성 보좌진들이 얼마나 더 많이 노력했는데, 선배들이 얼마나 힘들게 닦아놓은 길인데, 유리천장이 깨지려나 하는 와중에 ‘여비서’는 담당 기관이어도 같이 출장도 못가고 의레 업무에서 배제되고, 펜스룰 프레임에 갇히게 생겼습니다”라며 “국회에서 우리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성적인 의미의 ‘여비서’가 아니고 의원님을 도와 정책실무와 홍보 등등 의원실 업무를 함께 수행하는 ‘동료’입니다”라고 토로했다.

보수 야당과 보수 언론의 보도가 ‘펜스룰’을 조장하는 결과로 이어질 거란 우려인데, 펜스룰은 문제가 될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여성과의 접촉을 아예 차단한다는 의미다. 또 다른 방식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행태하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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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보좌관 등이 주로 글을 올리는 페이스북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도 ‘여비서 프레임’을 비판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한 직원은 “수행 보좌진이 남자였어도 이런식으로 의혹 제기하고 여비서 신상 터는 기사가 날까요? 꼭 ‘여비서와 둘이’ ‘출장 다녀와서 고속 승진’ 이런 프레임을 만드셔야 하나요?“라며 “오늘도 이 직업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모 야당 대표와 공인된 매체가 대놓고 성희롱을 해도 참아내야 하는 직업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의원님 우리 품격있게 싸웁시다’라는 글을 올려 “일하는 데 남자·여자가 어디 있냐. 성별과 상관없이 해당 분야를 담당하는 사람이 동행하고 배석하는 게 맞지 않냐“며 “이를 두고 마치 사생활에 흠결이 있거나 미투로 몰고 가고 싶은 건 알겠는데, 좀 부끄럽다”고 밝혔다. “당신들의 더러운 추궁이 여자 비서들을 더 괴롭힌다”는 지적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 역시 “‘원장과 여비서’라는 프레임으로 부적절한 시각을 유도해 국회의원 보좌진을 비하하는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왜 ‘여’비서라고 하며 남녀를 구분하려 하는가”라며 “보좌진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언론과 보수 야당의 행태를 묵과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10일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모여 설립한 더미래연구소 역시 성명을 내고 “김기식 전 국회의원의 보좌진으로 직급에 관계 없이 의정 활동을 보좌하였던 ‘더미래연구소’의 연구원에 대해 ‘여’비서 운운하는 것은 정책비서와 연구원으로서의 역할을 무시하고,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자유한국당 수준에서 ‘여’비서를 성적 대상화하여 저급한 상상력을 유도하려는 인권유린행위이자 치졸하고 비겁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미투는 성차별 사회에서 여성들이 겪는 여러 폭력의 문제들을 드러내고 해결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최근 보수 야당과 언론이 이번 사건에 미투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데, 이는 스스로 미투를 모르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비서의 신상을 털고 자극적인 보도를 함으로서 성희롱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열악하고 한정적인 환경에서 열심히 노력해 온 여성 비서관들을 다시 한 번 차별하는 행위이며 성차별 사회를 공고히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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