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강제추행도 친고죄 적용
과거사委 “과오규명·대안마련 중점”
‘고(故) 장자연 리스트 사건’에 대해 검찰 차원의 재조사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성 접대 강요 등 정황이 드러나도 관련자를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위원장 김갑배)는 2일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포함한 5건을 2차 사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유력 인사들의 성 상납 강요 의혹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그러나 장 씨가 2009년 3월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작성한 자필 문건과 실명 폭로에도 검찰은 결국 소속사 대표 김모 씨와 매니저 유모 씨만 불구속 기소해 ‘봐주기 수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사위 권고에 따라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수사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의혹이 있다고 판단되면 본격 조사에 나서 사건의 진상을 밝히게 된다.
그러나 9년 전 일어난 사건의 예상 혐의 대부분 공소시효가 만료됐기 때문에 재조사를 해도 관련자 처벌이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사건의 핵심은 장 씨가 김 씨 등에 의해 언론사 대표, 기업 임원 등에게 성 상납을 강요 받았는지 여부다. 당시 수사기관은 리스트에 오른 유력인사들의 성매매 혐의와 김 씨의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성매매, 성매매 알선 혐의의 공소시효는 5년이다. 재조사를 통해 성 접대 강요가 사실로 드러나도 이를 근거로 관련자를 처벌하기 어렵다.
만약 장 씨가 강압에 의해 성관계를 했거나 추행을 당했다면 강간,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이 혐의 시효는 10년으로 아직 만료되지 않았다. 다만 장 씨가 이미 숨을 거둬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이전에 일어난 강간 사건은 피해자가 직접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한 친고죄 규정 적용을 받는다는 걸림돌도 있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 경찰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검찰의 재조사도 수사 과정의 인권 침해나 검찰권 남용 의혹을 규명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다만 직무유기죄의 공소시효 또한 5년으로 이미 완성됐다. 따라서 수사 담당자들이 언론사 대표 등 유력인사들에 대해 고의로 봐주기 수사를 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징계 시효를 검토한 뒤 징계 처분 또는 도덕적 책임을 묻는 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사위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포함해 ▷2009년 용산 지역 철거 사건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의 배임 사건 ▷1990년 낙동강변 2인조 살인 사건 ▷1972년 춘천 강간살해 사건 등 5건을 2차 사전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하지만 9~46년이 흘러 재수사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과거사위 위원장을 맡은 김갑배 변호사(66ㆍ사법연수원 17기)는 “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에 위원회는 수사 과정에서의 검찰의 과오, 권한 남용을 밝히고 앞으로 인권 침해 등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안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유은수 기자/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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