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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경제포커스] 새 경제실세 류허의 '변속 성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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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중학 동창으로 리커창 대신하는 '중국 경제 사령탑'

高부가가치 제조업 육성은 한국 주력 산업과 정면 충돌할 듯

조선일보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올해 중국 양회(兩會) 기간을 전후해 가장 바빴던 중국 고위층 인사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경제 책사'인 류허(劉鶴)이다. 올 1월 말 다보스포럼 참석으로 국제무대에 데뷔한 그는 양회 개막을 코앞에 둔 2월 말엔 3박 4일간 워싱턴을 다녀왔다. 귀국 후엔 곧바로 전국인민대표대회에 참석해 경제 담당 부총리로 선출됐다.

류허는 1990년대 초반 주룽지 부총리를 연상시킬 만큼, 강력한 부총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시 주석의 각별한 신임을 받는 그가 사실상 리커창 총리를 대신해 시진핑 집권 2기 5년간 경제 사령탑 역할을 한다는 관측이다.

류허는 시진핑 집권 1기 경제 정책을 설계하긴 했지만, 학자로서 막후(幕後)에 머물러 있었다. 중국 내에서도 생소한 인물에 속한다. 요즘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영어로는 위챗)에서는 류허가 쓴 논문이나 글이 자주 뜬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류허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경제 개혁의 큰 틀을 밝혔다. 리커창 총리는 올해 전인대 개막일에 고속 성장보다는 '고질량(高質量) 발전'을 추진하겠다는 경제 개혁 방안을 담은 정부 업무 보고를 했는데, 류허의 다보스포럼 연설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했다.류허가 그리는 중국 경제 정책의 큰 그림은 성장 속도의 '변속'이다. 개혁·개방 40주년을 맞는 올해부터 7~8% 이상의 고속 성장에서 벗어나 '질(質) 좋은 발전'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1998년 1조달러를 기록한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2조달러를 돌파했다. 이 정도면 양적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올해부터는 연간 5.5% 정도만 성장해도 10년 안에 미국 경제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올해부터는 고속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한 지방정부와 기업의 부채, 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을 해결하는 데 힘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성장 속도 변속론은 고속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문제를 해결한다는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국무원 발전연구센터에서 일하던 2010년부터 변속론을 제기했는데, 핵심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1인당 GDP 2만달러 수준까지 발전하기 위해 중국 경제의 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싸구려 제품 생산에 주력해온 저부가가치 제조업을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바꾸자는 게 변속론의 중요 주제 중 하나다. 또 내수 소비 시장을 키워 중국 경제가 세계경제 외풍에 흔들리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도 있다. 수출·투자·소비 등 경제성장의 삼두(三頭)마차 중 수출과 투자에 대한 의존도를 대폭 줄이고 소비를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류허는 발전연구센터에서 일하던 시절, 중진국 함정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중남미 국가들을 둘러봤다. 당시 그가 파악한 중남미 국가들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고부가가치 제조업 같은 새로운 성장 엔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재정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복지에 매달린 포퓰리즘이었다.

이 포퓰리즘 문제는 류허가 2014년 '중국 최고 경제학상'이라는 쑨예팡(孫冶方) 경제과학상을 받은 논문인 '두 차례 세계경제 위기 비교연구'의 주제이기도 했다. 류허의 힘은 그가 시 주석의 중학교 동창 친구라는 데서만 오는 게 아니다. 그 뒤에는 탄탄한 공부와 전략, 시각이 있다.

류허의 중국 경제 개혁론은 우리에게 기회이자 위기일 수 있다. 그가 내건 고부가가치 제조업은 한국의 주력 산업과 정면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유식 중국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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