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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마음의 상처에 죄송" 안희정의 '비문' 사과, 이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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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든 고소인들의 '마음의 상처'에 대해 미안하다."
두 번째로 검찰에 출석한 안희정(53) 전 충남지사. 19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반적으로 ‘철수에게 미안하다’라고 표현하지, ‘상처에 미안하다’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조선일보

비서 성폭행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검으로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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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오정희)는 19일 오전 10시부터 안 전 지사를 상대로 조사하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비서였던 김지은(33)씨와 싱크탱크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직원 A씨를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안 전 지사는 이날 서부지검 포토라인에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인들께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하신다"며 "사과드린다. 그에 따른 사법처리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그는 '위력에 의한 강요 부분을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검찰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그는 검찰 출석을 위해 경기도 거처를 나서면서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어찌됐든 고소인들의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도 미안하다"고 했다고 한다.

안 전 지사의 기본 입장은 성관계나 신체적 접촉은 있었지만, 이를 위해 정치적 위상이나 업무상 관계를 이용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로 읽힌다. 전문가들은 안 전 지사가 형사책임과는 별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데 따른 도의적 책임은 인정하고 있다는 견해부터, 고소인들의 ‘피해’ 주장을 반박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 “도의적 책임 수긍”, “일부러 목적어 흘려, 가해(加害) 부인”

장철우 법무법인 동서남북 변호사는 “안 전 지사와 고소인들이 서로 주장하는 바는 다르지만, 우선 ‘미안함’을 전하면서 ‘법적으로는 다퉈보겠다’는 뜻을 내보인 걸로 보인다”고 했다. 형사책임이야 다퉈볼 것이지만, 도의적 책임은 수긍하는 선으로 풀이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들에게 ‘가해를 인정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마음에 미안하다’는 건 비문(非文)”이라며 “상처를 주장하는 고소인에게 유감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데,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 우회한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안 전 지사가 '피해자'에게 미안함을 표한 것이라기 보다는, '피해로 받아들이는 고소인의 인식‘에 양해를 표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미안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남에게 대하여 마음이 편치 못하고 부끄럽다"이다. “겸손히 양해를 구하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도 쓰인다.

대형 로펌의 한 변호사는 “‘고소인에게 미안하다’, ‘고소인 마음에 미안하다’ 어느 표현을 쓰든 법률상 범죄를 시인하는 표현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전자의 경우 상당히 포괄적이며, 후자의 경우 보다 특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형법은 피의자가 수사기관에 자수하면 형을 감면(減免)할 수 있도록 하면서, 피해자의 처벌의사가 중요한 친고죄(親告罪) 등의 경우 가해자가 ‘고소권자’에게 범죄사실을 털어놓는 자복(自服)과는 구분하고 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안 전 지사가 검찰에 자수하지 않은 것은 명백하고, 미안함의 대상이 ‘피해자 본인’이 아니라는 것은 범죄를 시인하는 ‘자복’이라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다만 성범죄의 경우 2013년 친고죄 폐지로 합의 여부 등 피해자의 처벌 의사는 형량을 정하는 데 고려될 뿐, 기소 결정 여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진짜 중요한 건 검찰조서에 담길 말”

결국 중요한 것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나오는 말이다. 한 중견 변호사는 "검찰에 뭐라고 진술했는지 조서에 담길 내용이 중요하다”며 "수사기관 밖에서 조사 대상이 남긴 말은 국민이나 언론 앞에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선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했다.

안 전 지사는 두 차례에 걸쳐 고소당했다. 지난 6일 김씨, 14일 A씨가 각각 검찰에 안 전 지사를 고소했다. 두 사람 모두 고소장에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이 있었다고 썼다. 검찰은 김씨와 A씨에 대한 조사 내용을 토대로 안 전 지사가 업무 관계를 악용해 성범죄를 저질렀는지 등을 추궁할 방침이다.

[정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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