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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 (목)

[왜냐면] 재판에 대한 ‘최변’의 상상은 현실이 될까? / 최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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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광석
변호사

1997년 변호사로 시작해서 법조 21년차. 지금은 큰 어려움 없이 법조생활을 하고 있지만, 적응 과정은 쉽지 않았다. 법 자체가 어렵기도 했지만, 법조 문화가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의 사법연수원 교육, 방대한 기존 판례를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교육의 전부나 다름없었다. 법조인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비판적인 사고와 가치를 형성하는 훈련은 거의 없었다. 기존 판례만이 정답이고 나머지는 오답일 뿐이었다. 법률 문서 작성방법 역시 법적인 근거나 합리적 이유 없이 기존 틀과 표현방식만이 강요되고, 벗어나면 감점이었다. 각자 취향이나 표현방식 차이를 용납하지 않았고, 별종이나 당돌한 도전 정도로 취급했다. 심지어, 법조예절이라는 과목을 통해 윗사람과 승용차 탈 때의 앉는 법, 소위 ‘상석’이 어디인지까지 배웠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해진 답 찾기에만 익숙한 딱딱하고 권위적인 법조인이 양성되었다.

사법연수생으로 ‘법원 시보’ 할 때 담당 부장판사 초청으로 연수생 10여명이 점심 모임을 한 적이 있다. 근처 식당까지 걸어갔는데, 한여름 무더위에 긴 셔츠, 양복 재킷 차림이라 10여분 이동 시간은 고통 그 자체였다. 고생 끝에 도착한 식당의 냉방 기운은 그야말로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고, 식당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본능적으로 재킷을 벗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재킷을 그대로 입고 좌석에 앉아 있었다. 순간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많이 더우니까 재킷을 벗을까요?’라는 부장판사의 말이 나오자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재킷을 벗기 시작했다.

얼마 전 이 에피소드를 검사로 재직 중인 후배에게 이야기하자, ‘형님! 검찰은 아직 그래요. 저는 그게 편한걸요’라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최근 법원행정처 블랙리스트, 검찰 내 성추행 문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 진행 중인 권위적 법조 문화의 한 부분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뿌리 깊은 권위주의를 고려하면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사법서비스 개선에 미온적인 법원 태도를 보더라도 그렇다. 조그만 수고로 국민 불편이 크게 덜어질 수 있지만 매우 소극적이다. 5분 남짓의 사소한 절차마저도 법정 출석을 강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음성이나 화상을 통한 전화, 거주지 근처 법원 내의 화상재판실 출석으로 충분히 가능할 재판도 무조건 해당 법원 출석을 의무화하고 있다. 다른 통신수단이 부족해 법정 출석 외에는 달리 재판할 방법이 없었던 수십년 전의 민사소송 절차를 지금도 그대로 고수한다. 법원 출석과 대기시간에 따른 당사자 불편은 물론 법원 관리 인력, 주차공간 부족 등 부수적인 문제가 고스란히 따라올 수밖에 없다.

법정 출석에만 의존한 재판 방식은, 다음 재판기일을 정하는 소위 “속행” 기일 지정에 3주 이상의 장시간이 걸리게 만든다. 모든 절차가 (조정실 포함) 법정에서만 이루어져 법정이 부족해 재판부마다 특정 요일에만 재판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탄력적인 기일 지정이 어려워 재판 지연의 원인이 된다. 10여년 전 유행어였던 ‘4주 후에 봅시다’라는 말이, 지금 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빛과 같은 속도로 변하는 다른 분야의 흐름과 너무 대조적이다. 다음 재판기일을 앞당겨 달라거나 다른 요일로 지정해 달라는 당사자의 희망은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원 여력이 안 된다’는 점잖은 한마디로 묵살되곤 한다.

속행과 연기를 거듭하면서 이런 식의 재판 일정이 반복되다 보면 1심 재판 마치는 데 1년이 훌쩍 가버린다. 재판 장기화는 경제적, 정신적 손해를 입는 당사자는 물론 재판이 지속되는 내내 사건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야 하는 변호사, 판사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다. 통상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는 잦은 판사 인사이동까지 더해, 신속한 재판은 요원한 실정이다. 만약, 법정 출석 아닌 전화 등의 방법으로 좀 더 간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재판이 가능해지면 출석에 따른 불편 감소는 물론 재판의 조기 종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재판부의 조그만 수고로 얻게 되는 국민 편익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수 있다.

10분 남짓의 짧은 재판을 위해 장시간을 이동하고 기다려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는 재판. 상상만으로도 부담이 훨씬 덜어진다. 무모할 것 같은 영화 속 월터의 상상마저도 현실이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나의 상상은 너무 당연한 상식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많이 늦은 만큼 조만간 개선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최근 법원 내부의 변화 조짐에서 모처럼 희망의 기운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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