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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사이먼 래틀이 찜한 그녀, 세계적 악단 수습단원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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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솔직히 말해도 돼요? 출근길이 너무나 즐거워요. 매일매일 출근하고 싶어요."

베를린에 머물고 있는 박경민(28)의 웃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이런 말하면 욕먹을 텐데…." 그 말을 하는 와중에도 활짝 웃고 있을 모습이 선했다. 그럴만도 했다. 직장이 세계 최고 악단인 베를린필이니 말이다.

비올리스트 박경민이 세계 최고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베를린필)에 지난달 15일 입단했다. 향후 2년간 수습 단원으로 활동한다. 이후 파트 동료 단원의 추천을 받아 단원 총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표를 얻으면 정단원이 된다.

"마지막 오디션이 여섯 시간 넘게 걸렸어요. 회의 후 결과가 바로 나왔는데 멍했어요. 기분이 너무 좋으면 사람이 넋이 나가더라고요. 꿈인지 생신지 분간이 안 되는 느낌이었어요."

박경민은 지난해 12월 이미 세 차례 오디션을 거쳤다. 수많은 연주자들이 지원했지만 오디션 초대장을 받은 이는 약 50명에 불과했다. 독특한 점은 오케스트라 합주곡 대신 독주곡이 과제 음악이었다. "베를린필은 다른 악단에 비해 개인의 독주 역량을 중요하게 보는 듯해요. 실제로 베를린필의 연주자들은 모두 화려한 독주자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나태해질 수 없는 곳이란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면 소속감과 안정감에 젖기 쉬운데 이곳에서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요. 끊임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동기부여가 되는 곳이거든요."

베를린필은 절도 있는 연주와 칼로 벤 듯한 합주로 유명하다. "관객의 입장으로 객석에서 볼 때 베를린필 단원들은 정말 무섭고 차갑고 날카로운 사람들일 거라 막연히 생각했죠."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미 넘치는 오케스트라라고. "보통 사람들처럼 장난도 치고 너무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물론 자기 일에 대해서는 굳은 신념을 가진 아티스트들이에요. 제가 객원 연주자로 같이 섰다고 오디션에서 좋게 봐주거나 이런 꼼수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곳이죠."

열세 살에 독일 유학길에 오른 박경민은 2013년 독일 ARD 국제콩쿠르에서 2위와 청중상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밟았다. 그는 고등학생이던 18세에 이미 객원연주자로 베를린필에서 첫 연주를 했다. 스승이자 베를린필 단원인 발터 퀴스너의 추천 덕분이었다. 지난해에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이끈 베를린필의 아시아 투어에도 객원 단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정식 단원이 아닌 객원 단원으로 베를린필 투어 일정에 합류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 당시 입단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일본에서 연주가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데 사이먼 래틀 경이 제게 오시더니 저한테 이름을 물으시면서 '열정적으로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꼭 정식 단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해주셨어요. 저는 잘 보이지 않는 뒤편에 앉아 있었는데 저를 눈여겨보셨더라고요."

박경민은 앞으로 2년 동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한 후 종신직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입후보하게 된다. 한국 연주자가 베를린필 수습 단원으로 선발된 건 1995년 홍나리(바이올린, 당시 23세) 이후 두 번째다. 종신직 단원이 된 한국인은 아직 없다. "자신 있냐"는 질문에 그는 "자신 없지는 않다. 물론 있다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고 답했지만, 목소리에서 단단한 확신이 느껴졌다. "이곳 분위기를 아는 만큼 2년 동안 열심히 준비한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을 것 같아요. 기쁜 소식으로 다시 연락드리고 싶어요."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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