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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처벌은 강하게, 행정 부실은 모르쇠 '판로부실법' <상>무차별 발급 중소기업확인증, 잘못되면 기업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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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자 간 경쟁품목 제도를 둘러싸고 정부와 기업 간 분쟁이 수년째 끊이지 않고 있다. 입찰 담합, 위장 중소기업, 직접생산확인 부실 등 중기간 경쟁품목 관련 행정 절차 전반이 명확한 지침 없이 주먹구구 운영되기 때문이다.

2016년 중기간 경쟁제도 운영 부실 전반에 대한 감사원의 대대적 감사에도 행정 절차로 인한 부작용은 여전하다. 행정 부실 보완보다 처벌 강화에 치중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제품 구매 촉진을 위해 도입된 중기간 경쟁제도와 이를 규정한 판로지원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중소기업확인서를 발급받은 A사는 최근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신사업 발굴을 위해 추진했던 신규 사업으로 인해 회사 전체가 '위장 중소기업'으로 낙인찍힐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중기부는 지난 5일 중소기업간 경쟁입찰에 참여하기 위해 허위로 중소기업확인서를 발급받은 8개사에 대한 청문을 실시했다. 중기부는 청문 결과를 바탕으로 위반 여부에 따라 경쟁입찰 참여자격 취소와 검찰 고발, 과징금 납부 명령 등을 처분할 계획이다.

지난해 헌법재판소는 위장 중소기업의 공공조달 시장을 제한하는 현행 판로지원법에 헌법위반 소지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여전히 현장에서는 혼선이 계속된다. 지난해 헌재는 '지배·종속 관계'를 시행령으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 위반 소지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문제는 중소기업확인서 발급하는 중소기업기본법과 공공조달 참여를 규정한 판로지원법이 다르다는 데서 발생한다. 판로지원법은 중소기업 가운데서도 대기업 또는 중견기업과 지분관계가 있거나 대표이사 겸직 등을 하는 기업은 공공조달 시장에 참여를 배제한다.

A사 신규 사업 담당 임원은 “최대주주와의 지분관계, 겸직 여부 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잘못은 있지만 실무자 착오로 발생한 문제로 형사 고발과 위장 중소기업 낙인까지 찍힌다는 것은 지나친 처사”라며 “공공입찰 참여를 위한 기준이 판로지원법에 규정돼 있다는 것은 사건 발생 이후에 알게 됐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무차별 발급되는 중소기업확인서와 직접생산확인증명 등도 현장 혼선을 키우는 요인이다.

중기부는 2015년부터 각종 지원기관이 시행하는 각종 시책에 중소기업 참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범용 중소기업확인서를 발급하고 있다. 직접생산확인증명은 실제 제품을 생산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중소기업중앙회 산하 협동조합 등이 확인한다.

A사 관계자는 “중소기업 확인 과정에서 연결기업 매출 등을 고려해 중소기업확인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공공시장 입찰을 위한 기준은 또 다르다는 점이 일선 실무자에게 혼돈을 주고 있다”며 “중소기업 확인 과정에서부터 중기부와 조달청이 공공시장에 참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렸다면 지금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불만을 호소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직접생산확인 증명 과정에서도 중소기업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며 “절차를 마친 만큼 큰 문제가 없다고 여겼는데 청문이라니 당황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중기부도 위장 중소기업 적발 기업의 불만을 충분히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부작용은 적지 않다. 중기부는 중소기업확인서를 발급받은 기업을 대상으로 매년 실태조사를 실시한다. 지난 5일 개최한 청문도 이에 따른 후속조치다.

하지만 금융감독원의 공시 내용를 바탕으로 사후 이뤄지는 조사 특성 상 청문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앞서 중기부는 사후 지분 변동 여부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위장 중소기업을 잘못 지목한 경우가 발생하기도 했다.

상이한 기준 탓에 공공조달 시장 참여 자격이 있음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중소기업이 아닌 비영리 단체와 사회적기업 등도 중소기업으로 간주해 공공조달시장 참여를 확대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회적기업은 장애인기업이나 여성기업과 달리 아직 공공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공공시장 진입을 위한 직접생산확인증명 등의 절차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공공시장 진입에 대한 정부 차원의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원은 “공공조달시장에 위장 중소기업을 걸러내고 창업·중소기업을 위한 판로를 연다는 점에서 공공조달시장을 규정하는 판로지원법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 개선 고민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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