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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정리뉴스]고은 성추행 폭로 한 달···문단 ‘거물’은 어떻게 ‘괴물’이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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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서울도서관 3층 전시실에 있던 ‘만인의 방’이 철거됐습니다. ‘만인의 방’은 고은 시인(85)의 대표작 ‘만인보’에서 이름을 따 조성한 공간으로, 고은 시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한 전시 공간입니다. ‘만인의 방’에는 고은 시인의 필기구, 안경, 모자, 육필 원고, 집필 자료, 도서 등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단독]서울시, 고은 '만인의 방' 철거한다

고은 시인이 성희롱·성추행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터져나온지 약 한 달이 흘렀습니다. 한때 ‘노벨 문학상’ 유력 후보자였던 고은 시인의 명성도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최영미 시인의 폭로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일을 정리했습니다.

■2월 초- 최영미 시인, ‘괴물’을 폭로하다

최영미 시인이 지난해 말 출간된 계간 문화지 <황해문화>에 실었던 시 <괴물>이 지난달 재조명됐습니다. 당시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을 폭로하며 ‘미투(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점화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최영미 시인은 시 <괴물>에서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 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이라고 적었습니다. 시에서 ‘En선생’은 성추행을 일삼는 작가로 그려집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받고 나는 도망쳤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등 대목이 나옵니다.

곧이어 ‘괴물’로 지목된 ‘En선생’이 고은 시인을 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고은 시인의 성추행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최영미 시인, ‘미투’ 동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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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 거세지는 ‘성추행 논란’…고은의 추락

논란이 커지자 고은 시인은 단국대 측에 석좌교수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고은 시인은 2008년 석좌교수로 임용된 바 있습니다. 단국대 측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나로 인해서 단국대에 누를 끼치기 싫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은, 단국대 석좌교수직 물러나 "누 끼치기 싫다"

또한 최대 문인단체인 ‘작가회의’는 상임고문직을 맡고 있는 고은 시인을 징계(자격정지·제명)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최대 문인단체 작가회의, 고은·이윤택 내달 징계

고은 시인의 시는 ‘시낭송 행사’에도 부적합한 상황이 됐습니다. 지난달 23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주최로 군산 예술의 전당 소공연장에서 고은 시인 시낭송회가 열렸는데, 이후 이를 비판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습니다. 문체부는 곧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고은 시인의 성폭력 논란을 감안하여 기존 사업 내에 유사사례가 없는지 등을 전수 조사해 사업 기획·운영에 좀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체부, 고은 시인 시낭송회 논란 해명

■3월 초 지자체·정부, ‘고은 지우기’…성추행 의혹 때문

경기도 수원시는 고은문학관을 건립하려던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그동안 수원시는 고은재단과 함께 고은문학관을 추진해, 고은문학관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려던 계획을 세웠었습니다. 성추행 논란이 터진 이후 “국민 여론을 반영해” 사업을 취소한 것입니다.

또한 고은 시인은 2013년부터 창작 활동을 하던 수원시 제공의 ‘문화향수의 집’에서 떠나겠다는 의향을 밝혔습니다.

경기 수원시·고은재단, 고은문학관 건립 계획 철회

또한 수원시는 수원시 권선구 권선동 올림픽공원 내 ‘평화의 소녀상’ 옆에 설치돼 있던 고은 시인의 추모 시비(가로 50㎝·세로 70㎝)를 철거했습니다. 이 추모 시비는 고은 시인이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위해 쓴 시(‘꽃봉오리채’)를 새긴 것입니다. 이주현 수원평화나비 상임대표(목사)는 “수원지역 여성단체에서 고은 시인의 추모 시비 철거를 요청했고, 이어 열린 수원평화나비 긴급 운영위원회에서도 고은 시인의 부도덕한 행위 의혹이 평화의 소녀상 이미지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수원시에 철거를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수원시, 고은 추모 시비도 철거

포항시 역시 시청사 내에 벽화로 그려진 고은 시인의 <등대지기> 시화를 철거했습니다. 당초 <등대지기>는 1층과 2층 계단 사이 벽면에 걸려 있었는데요. 민원인과 공무원 사이에 성 추문 논란에 휩싸인 고은 시인의 작품을 보고 항의와 불만이 잇따랐다고 합니다. 벽화 위에 페인트를 덧칠해 없애기로 했다고 합니다.

포항시, 고은 흔적 지우기...'등대지기' 철거

또한 통일부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출범시부터 이사장을 맡았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에서도 면직됐습니다.

고은,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이사장에서 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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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 잠잠하던 시인, 외신에 먼저 입장 밝혀

지난 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에서 고은 시인의 출판을 맡고 있는 시 전문 출판사 블러닥스(Bloodaxe Books)의 닐 아슬리(Neil Astley) 편집자로부터 전달받은 고은 시인의 성명(statement) 내용을 소개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고은 시인은 “자신이나 아내에게 부끄러운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계속 집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한 “최근 불거진 (성추행) 혐의에 내 이름이 포함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나의 과거 행실이 야기했을지 모를 의도치 않은 상처들에 대해 이미 사과의 뜻을 표한 바 있지만 일부 여성들이 나에 대해 제기한 습관적 성폭력 의혹에 대해선 단호히 부정한다”고 밝혔습니다.

고은, 외신에 첫 해명 "나 자신이나 아내에게 부끄러운 짓 한 적 없다"

■3월 초- “언어가 떠나버렸다”는 시인

최근엔 고은 시인이 출판사 스리체어스 측에 밝힌 입장이 뒤늦게 공개됐습니다. 고은 시인은 지난달 19일 “지금은 언어가 다 떠나버렸다. 언젠가 돌아오면 그때 말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출판사 스리체어스는 고은 시인을 다룬 도서를 전량 회수해 폐기 처분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성추문' 고은, 해명 요구에 "지금은 언어가 다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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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몰락…스스로 초래한 불명예

한국 문단의 거물로 꼽히던 고은 시인의 명성은 무너졌습니다. 다른 것도 아닌, 고은 시인 자신이 저질렀다고 의심을 받는 행동 때문입니다.

등단 60주념을 기념해 3월쯤 출판사 창비에서 출간될 예정이던 시집 <심청>의 출간 시점도 불투명해졌습니다. <심청>은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그린 서사시로, 200자 원고지 1000여매으로 웬만한 장편소설 분량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봄 출간 예고 고은 시인 시집 '심청' 출간 일정 불투명

또한 고은 시인의 작품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교육부 조사 결과, 모든 출판사들이 중·고등학교 국어과 교과서에 실린 고은 시인의 시 ‘그 꽃’, ‘머슴 대길이’, ‘선제리 아낙네들’, ‘성묘’ 등 15건을 삭제 혹은 교체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은 작품 전부 교과서에서 삭제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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