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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경영칼럼] 지속 가능 경영 원한다면 ‘민첩한 고양이’ 전략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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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영전문지 Inc.가 선정한 ‘2017년 최고의 비즈니스 서적’ 중 재미있는 제목이 눈에 띈다. 레오나드 셔먼 컬럼비아대 교수가 쓴 ‘개싸움판에서는 고양이가 돼라(If You're in a Dogfight, Become a Cat)’다. 한 기사는 이를 ‘개와 고양이 : 고양이의 민첩함으로 장기적인 사업 성공을 이루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이 책을 통해 셔먼 교수는 개와 고양이의 습성을 비교하며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기업이라면 고양이형 전략을 취하라고 조언한다.

개들은 싸울 때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식으로 서로 할퀴고 물어뜯는다. 기능과 디자인을 서로 베끼기 바쁜 전형적인 미투(me too) 전략이다. 유사한 서비스를 앞다퉈 선보이는 항공사들이나 향과 맛, 기능을 서로 모방하며 수많은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는 식품·치약업계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고양이는 상대의 어깨 너머를 보고 자신만의 영역을 찾아 나선다. 적에게 관심을 모조리 쏟기보다 자신만의 공간과 룰을 만드는 데 열중한다. 고양이 같은 기업의 예로 호주 와인업체 옐로테일을 들 수 있다. 옐로테일이 미국에 진출할 당시 현지 시장에서 와인을 마시는 비중은 15%에 불과했다. 대부분 와인업체들이 이 15%의 시장을 타깃으로 승부하고 있었지만, 옐로테일은 와인 대신 맥주와 소다를 주로 마시는 85%의 비시장(non market)을 바라봤다.

복잡한 포도 품종과 지역, 와이너리 이름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던 초보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레이블을 사용하고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중저가 와인을 선보인 결과 미국 시장 진출 4년 만에 연간 800만병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게 됐다. 그리고 ‘캐주얼 에브리데이 와인’ 시장의 독보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성공적인 고양이 전략은 경쟁사에 휘둘리기보다 자사 고유 경쟁력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시장의 빈틈 찾기에 집중할 때 실현된다. 소비자의 깊은 고민을 헤아리고 해결책을 궁리한다면 작은 아이디어로도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

접시 위에 단지 다섯 개의 선을 그어 많은 이들의 걱정을 해소해준 제품이 있다. 네덜란드의 영양학자와 디자이너가 고안한 ETE 접시(ETE plate)다. 건강과 외모, 다이어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저지방 식품, 건강보조제 등 다양한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졌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근본적으로 원하는 것은 체중 감량을 넘어 스스로 영양의 균형과 음식 양을 조절할 수 있는 지속적인 건강한 식생활이었다. ETE 접시는 여기에 주목해 만들어졌다.

ETE 접시는 다섯 개 선으로 공간이 분할돼 있다. 각 부분에는 밥·면, 육류·생선, 채소, 샐러드 등의 이름이 붙여졌고, 빈 공간(empty)도 표시돼 있다. 필수 영양소의 하루 권장량에 맞춰 매 끼니 분량을 섭취할 수 있도록 나눈 것이다. 다이어트가 필요한 사람은 음식을 담을 때 빈 공간을 비워두면 된다. 건강한 식사를 위해 음식을 어느 정도 나눠 먹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실질적인 걱정을 간파한 결과다. 2014년 이 접시가 출시됐을 때 많은 언론들이 호평하며 스마트 상품으로 소개했다. 소비자들이 쉬운 방법으로 건강한 식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데도 기여한다는 점이 높게 평가됐다. 경쟁사 어깨 너머, 시장에서 충족되지 않은 니즈가 무엇이고 고객이 평소 아쉬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한다면 성숙한 산업일지라도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확보하는 것이 가능하다. 경쟁기업의 일거수일투족에 매몰돼 모방 경쟁에 치중하다 보면 제로섬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매경이코노미

[최순화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949호 (2018.03.14~2018.03.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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